Y군/느낌 생각 기억 40

난 어떻게 밑천을 마련했고 어떻게 그걸 다 소진했는가

최근 2-3년 동안 반복해서 드는 생각이 있었다. 바로 밑천이 털렸다는 느낌이다. 10년 전, 나한테는 남들한테 없는 특별한 지식과 경험이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 회사에서 처음 스카우트 제의가 왔을 때 나는 자신감이 있었고, 그 회사에서 아직 경험하지 못한 가치를 제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부족한 영어 때문에 회사로 오르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기도를 하기는 했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면 팀 내의 누구보다도 먼저 일을 끝내고 지속적인 성과를 냈었다. 그런데 지금은 느낌이 조금 다르다. 내 업무 분야에서의 자신감과 자부심은 아주 높지만, 그 이외에는 모르는게 너무 많아진 것 같다. 가난하고 젊은 이민자였던 나에게 중요한 것, 나의 밑천은 어디에 떨어뜨려 놓아도 먹고 살 수 있는 지식과 행동력이었는데, 이렇게..

7년의 클라이밍

나는 클라이머(Climber)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인도어 클라이밍 중에서 주로 불더링(Bouldering)을 한다. 지난 7년 동안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이제는 클라이밍이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척 크다. 2016년 봄까지 나는 클라이밍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한국에서 등산을 즐겼고, 산중에서 군생활을 했기 때문에 등반(climbing)은 낯설지 않았지만, 체육관에서 암벽 등반을 한다는 것은 나에게 아주 생소했다. 물론 클라이밍이라는 스포츠가 전 세계적으로 보급이 되고 있었고, 특히 한국에서는 김자인 선수나 천종원 선수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클라이머들이 있었지만, 나에게는 신세계일 뿐이었다. 그즈음의 나는 회사일과 육아 이외 것에는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었다. 운동은 고사하고 잠도 네댓..

주전자를 태우다

지난 주에 이어서 또 주전자를 태웠다. 그로 인해 받은 정신적인 충격이 매우 크다. 솔직히 말해서 주전자를 태우는 것은 아버지나 어머니 뻘 되시는 분들이나 하는 나이 때문에 생기는 실수라고 생각해왔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감자나 빨래를 삶다가 태우시는 걸 봐왔고, 장인 어른께서 커피물 끓이시다가 주전자를 몇 개씩 태우시는 것을 보면서 나도 세월이 지나면 언젠가 주전자를 태우는 날이 오겠거니 했는데.. 생각보다 그 날이 예상보다 훨씬 빨리 온 것이다. 드립커피와 차를 즐겨 마시기에 주전자에 물을 끓이는 것이 나에게는 생활의 일부이다. 물 올려 놓고 딴 일 하다가도 시간이 되면 몸 안의 어떤 센스가 경보를 주고, 나는 제깍 하던 일을 멈추고 불을 끄러 가곤 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 센스가 작동을 하지 ..

외로운 날들의 보상

나이가 들면서 가까이 지낼 사람 혹은 친구로 지낼 만한 사람을 만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고 한다. 그것은 아마도 학창 시절처럼 서로에게 숨김 없는 순수한 우정을 쌓을 기회나 시간이 적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특히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되면 친구와 우정을 쌓을 절대적인 시간이 줄어들게 되는데 정이나 신뢰라는 것이 시간을 두고 쌓이는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특별히 놀라운 사실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25년 이상을 한국에서 살다가 친구들이나 친지들을 모두 떠나 외국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외로움이라는 것을 기본 옵션으로 가지고 삶을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비록 살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 안부를 묻는 소위, 'friends'가 되지만 한번 리셋된 마음 속의 전화번호부는 좀처럼 채워지지가 않는다. 우정이..

사람 많은 뉴욕에서 고향친구와 우연히 마주친다면

뉴욕에는 사람이 정말 많다. 전세계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메트로폴리탄 지역이고, 다양한 인종의 용광로인지라 체감하는 인구수는 서울이나 도쿄에 비해 훨씬 더 높은 것 같다. 그런 뉴욕에 온지 어느새 3년 반이란 세월이 지났다. 그 동안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늘 새로운 사람만 만나게 되지 아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참 드물다. 특히 한국에서부터 아는 사람은 단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뉴욕에는 한국 사람도 많다. 요즘은 한인 타운 지역은 물론이고 맨하튼 어디를 가도 한국말을 들을 수 있는데 어디서 이렇게 다들 왔을까 새삼 궁금해질 때가 있다. 어떤 날은 늦은 퇴근 길에 전철을 탔는데 내가 탄 열차 칸의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 중에 10명이 한국 사람이어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한국 사람이 많다는 캘리..

브레인 불만족 - 멀티태스킹 못하는 자의 불만과 희망

요즘 나의 시간을 묘사하자면 보기 좋은 조각으로 나뉘어서 각각 다른 입에 들어가는 치즈케익 같다. 어떻게든 벌이를 해야만 해서 작년 하반기까지는 이일 저일 손대고 있는 것들이 많았는데 거의 다 정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작년에 파트너 형님들과 창업한 회사들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에 시작된 웹 컨설팅 일이 2가지에 일주일을 쪼개서 조금씩 나눠서 투입하고 있는 상황인데 서로 비슷한 분야이기 때문에 시너지도 많이 나지만 반대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때가 많다. 월요일은 A회사일, 화요일은 B회사일, 수요일은 C회사일, 목요일은 B회사일, 금요일은 다시 A&C회사일, 저녁 밑 밤에는 D회사일 정도로 시간을 나눠서 일을 하는데, 문제는 시도 때도 없이 넘어오는 급히 처리해야 할..

버스 안에서 영단어를 외우는 멕시코 청년

꽤 오래 전부터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여기저기로 웹 컨설팅 일을 하러 가고 있다. 아침에 맨하탄에서 뉴저지로 reverse commuting을 할 때도 종종 있다. reverse commuting은 보통 도심지 주변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도심으로 통근을 하는데 반해 도심지에 거주하며 일은 주변 지역에서 하기 위해 통근하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매일 뉴저지에서 수백만의 인구가 맨하탄으로 버스, 기차 자가용 등을 이용하여 통근(commuting)을 하는데 반대로 맨하탄에서 뉴저지로 출퇴근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주로 버스를 이용하는데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warehouse 등에서 일을 하는 멕시코인 노동자들이 타고 내리는 것을 자주 보게 되는데 언제부터인가 이들 중 자주 보는 한 청년이 매일 열심히 수첩..

처남이 한국말을 한다! - 이민사회 세대간 차이와 남겨진 숙제

며칠 전에 큰처남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갑자기 저를 ‘형’ 이라고 부르면서 떠듬떠듬 한국말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너무 놀라서 전화기를 떨어뜨릴 뻔 했는데 오랜만에 처남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재미있게 나눌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처남하고 한국말로 이야기를 한 것이 무슨 큰 사건인가 하겠지만 처남은 한국말을 거의 못하는 재미교포 2세입니다. 장모님께서 거의 네이티브 수준으로 영어를 하시고, 한국사람들이 많이 없는 곳에서 자라서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하지요.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만 한국서 나고 자란 사람인 저를 만나면서, 그리고 한국 드라마에 빠져들면서 한국말이 일취월장한 케이스이죠.^^) 그런 처남은 어설프게 한국말을 하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합니다. 게다가 굉장히 미국적이라서 형..

얼음장 같이 차가운 물

올 겨울에는 집 안에서 춥다고 느낀 적이 별로 없었는데 어제는 추워서 아침부터 고생을 좀 했습니다. 건물의 보일러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더군요. 일 때문에 첼시 쪽에 나가야 해서 머리를 감아야 하는데, 보일러가 고장 났으니 따뜻한 물이 나올리 만무하지요. 나갈 시간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서 떡진 머리를 하고 책상에 앉아서 일을 좀 하다가 오전이 다지날 무렵에야 욕실로 들어갔습니다. 제가 찬물로 씻는 걸 좀 많이 싫어합니다. 군생활을 강원도 인제에서 했는데 막사 시설이 낙후되어서 뜨거운 물을 하루에 한번만 쓸 수 있었거든요. 짬밥 안될 때는 그것도 쓰질 못해서 일주일씩 씻지 않고 살다가 분대장의 명령에 동기들과 영하 25도의 겨울날 찬물로 샤워를 한 적도 있습니다. 추운 곳에서 군생활 해보신 분들은 다 이해하..

K군, 뉴욕에 다녀가다

내 블로그에 자주 등장하는 절친한 형이자 둘도 없는 친구인 K군이 다녀갔다. 사실 다녀갔다라는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어려운 걸음을 한거다. 서울에 사는 사람이, 직장생활 하면서 받은 첫번째 장기휴가에, 100만원이 넘는 비싼 비행기표를 사서, 뉴욕으로 친구내외를 보러 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걸음인지 짐작조차 못하겠다. 어려운 걸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기는 하지만.. K군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그리고 고마운 사람이다. 마음 편히 기댈 수 있는 친구나 친지 하나 없는 미국에서 3년 반 동안 살아오는 동안 이렇게 미국으로 나를 보러 온 사람은 K군이 처음이다. 여행이나 출장으로 뉴욕에 머무는 동안 잠시 얼굴을 본 친구들이야 몇명 있었지만 이곳이 한국에서는 거의 지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