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클라이머(Climber)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인도어 클라이밍 중에서 주로 불더링(Bouldering)을 한다. 지난 7년 동안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이제는 클라이밍이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척 크다.
2016년 봄까지 나는 클라이밍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한국에서 등산을 즐겼고, 산중에서 군생활을 했기 때문에 등반(climbing)은 낯설지 않았지만, 체육관에서 암벽 등반을 한다는 것은 나에게 아주 생소했다. 물론 클라이밍이라는 스포츠가 전 세계적으로 보급이 되고 있었고, 특히 한국에서는 김자인 선수나 천종원 선수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클라이머들이 있었지만, 나에게는 신세계일 뿐이었다. 그즈음의 나는 회사일과 육아 이외 것에는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었다. 운동은 고사하고 잠도 네댓 시간 정도 잠자는 것도 버거워서 실내 스포츠를 즐긴다는 것은 가지지 못할 사치라고 여겼다.
7년 전인 2015년, 나와 아내는 정신적, 육체적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세 살도 안된 두 아이들과 맨해튼을 떠나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시카고에 와서 고군분투하며 1년을 보냈다. 스트레스와 운동부족으로 우리의 건강이 서서히 망가졌지만 그것을 인지하지도 못할 만큼 하루하루가 벅찼다. 재택근무로 시간이 나보다 flexible 했던 아내는 아이들 보육원 가는 길에 있는 짐에 등록하고 오전시간을 이용해 트레이너와 함께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고 그 효과는 즉시 삶의 여러 면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 또한 운동을 하고 싶었지만 퇴근 후에 탈탈 털린 몸과 마음을 끌고 집을 나선 후 운전을 해서 운동을 하러 간다는 것은 너무나 큰 도전이었다. 시카고에는 같이 운동할 친구조차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동네에 빈 서점 자리에 짐이 하나 들어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Borders라고 대형 서점이 있던 자리였기 때문에 그 규모가 제법 클 것 같아서 매우 기대가 되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익숙한 웨이트 트레이닝 기구는 하나도 보이지 않고 이상한 벽들이 들어서고 거기에는 색색의 조각들이 그 벽에 설치되는 매우 생소한 광경을 몇 주간 볼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클라이밍 짐이었다. 그 당시 나에게 퇴근 후에는 다시 집 밖으로 나가는, 특히 운전을 해서 운동을 하러 간다는 것은 보통 결심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걸어가도 2분, 뛰면 30초 거리에 짐이 있다면 종목이 뭐가 되었던 일단 시도를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6월 중순 미국의 Father's Day 선물로 아내가 클라이밍짐 한 달을 등록해 줬다. 먼저 운동을 시작하며 긍정적인 효과를 본 아내의 현명한 계획이었다. 월회원비가 비싸서 망설이던 나는 계속 안 하더라도 몸이라도 풀자며 시도를 했는데, 처음 벽에 오르던 날, 클라이밍의 푹 빠진 것이다.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과 격하게 몸을 부딪히면서 생기는 부상의 위험 없이, 나 혼자 벽에 매달려 몸과 마음을 동시에 쥐어짜서 운동을 하는 것이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평생 즐길 수 있는 운동, 자라는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스포츠로 몸관리만 잘하면 오륙십 대까지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7년 가까이 되는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 아직도 클라이밍 하는 시간이 일주일의 하이라이트다. 어떤 문제(route)들이 새로 만들어졌을지, 퍼포먼스는 얼마나 나올 것인지 등에 전날밤부터 신이 난다. 또한 시카고에서 친구가 없던 나는 클라이밍을 하면서 많은 친구들을 만났다. 대부분은 나보다 10살에서 20살 가량 어린 친구들이지만 내 나이 또래 혹은 나보다 많은 친구들도 있다. 나름 익스트림 스포츠라 그런지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끼리 믿음과 유대감이 더 깊은 것 같다. 도시에서 분주하게 사는 나에게 클라이밍은 취미이자 특기이고, 운동이자 놀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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