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군/느낌 생각 기억 40

금전에 관한 생각

종종 미국생활에 유용한 금융지식을 블로그에 포스팅해 주시는 yjae님의 글을 읽고 금전에 관한 저의 생각을 몇 가지 끄적여 봅니다. 전 경영학을 전공해서 그런건지..(진짜 경영학적인 사고라도 했으면 좋겠다!) 신용카드와 친구들에게 꾼 돈으로 버티며 IMF 시절을 살아서 그런건지..(안습..) 부채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편입니다. 물론 그 부채의 양에 대한 스스로의 채무능력이 의심되지 않는 범위에 한해서입니다. 저희 어머니나 아내는 펄쩍 뛸 말이지요. 부채도 잘만 활용하면 그 부채의 현재가치보다 높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요. 스스로의 신용한도를 넘어가지 않는 것이 중요한데 제 개인적인 신용한도는 부채의 양에 의해서 제 생각이나 행동이 소심 혹은 찌질해지지 않을 때까지입니다. 모기지나 카드 빚 때문..

고2 어느 여름밤 느꼈던 공포 그리고 K군

지금은 나에게 누구보다도 소중한 형이자 친구인 K군이란 사람이 있다. 나보다 1년 일찍 학교를 들어간 탓에 내가 고2 때 고3이었던 K군은 정말 독특하고 재밌으면서도 배울 점이 넘치는 선배였다. 너무 죽이 잘 맞은 탓에 의형제까지 맺어버린 이 사람이 그 해 여름 평생동안 잊지 못할 (=두고두고 놀려먹을) 에피소드를 만들어주었다. 한국의 여느 고등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학원으로, 학원이 끝나면 독서실로 직행하곤 했는데 독서실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는 늘 새벽 2시가 넘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시간까지 공부를 하면서 깨어있다는 것도 대단했지만 그 늦은 시간에 가로등만을 의지해서 20분 가량을 혼자서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왔다는 것이 더욱 놀랍다. 공부한답시고 밤 늦도록 무리지어..

20대 후반 가을, 내 인생의 turning point

한동안 포스팅이 뜸했습니다. 많이 바빴거든요. 시간이 터무니 없이 부족하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또 그만큼 따라잡아야 했기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없었을 뿐이지요. 얼마 되지 않는 RSS 독자들도 5분 정도 잃어버렸네요. 포스팅은 짧은 말로 채우겠습니다. 삶에 아주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백수생활을 접고 완전히 새로운 경력을 시작하는 것뿐만 아니라 삶의 자세가 크게 변하고 있다. 웹 기획이라는 새로운 동시에 매우 익숙한 분야로 들어가기 위해 회계라는 파트타임 일을 시작했고 남는 시간에는 웹 프로그래밍 공부를 시작했다. 삶의 자세가 변했다함은 한동안 익숙하지 않은 현실에 움츠려 들었던 도전과 모험에 대한 용기를 되찾았다는 것이고 세상은 나를 향해 열려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온몸..

달래밭을 보지 못하고 달래만 보았더라

어린 시절 나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책가방을 던져 놓은 채 곧장 뒷산으로 달려가곤 했다. 숫기가 없었던 나는 혼자서 혹은 친한 친구 한둘을 데리고 풀, 벌레, 나무 등 자연을 관찰하고 놀기를 좋아했었다. 그래서 시골에 놀러가면 집 뒷산에서 못보는 자연환경에 설레이곤 했었다. 그 시절 나는, 미국에 사는 지금은 구경조차 하지 못하는, 달래를 참 좋아했다.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달래무침은 매콤한 양념과 상콤한 달래향으로 봄과 함께 기다려지는 우리집 특미였다. 내가 8살인가 9살이었을 때, 여느 때와 같이 뒷산으로 놀러간 나는 땅속에 숨어 있는 달팽이를 찾다가 달래 몇뿌리를 발견했다. 신이 나서 캐어간 달래로 어머니께서는 뒷산에도 달래가 있더냐 신기해하지며 한줌 밖에 되지 않았지만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 주..

우리는 함께 밥을 먹어야 한다

엊그제는 아내와 약간의 다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겼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합니다. 아내가 외출에서 돌아오면 저녁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는데 아내가 한시간 정도 늦었습니다. 저는 배고픔을 참고 기다렸는데 먼저 먹지 않았다고 되려 아내한테 핀잔을 들었지요. 아내의 주장은 바쁜 삶 속에서 식사는 각자의 편의를 보아 개인적으로 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제 생각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가족이라면 어떻게든 함께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겁니다. 미국사람들은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문화를 가졌기에 부모 자식 간은 물론이고 가족 구성원 개개인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존중하고 크게 간섭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개인적이라고 해도 미국사회는 기본적으로 가족단위입니다. 그들은 함께 할 때는 함께 하며 그 모..

내 인생 삼분의 일을 지배한 두 문장

저에게는 인생의 적지 않은 시간,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까지 함께한 두 문장이 있습니다. 처음 접했던 순간부터 저의 전두엽에 깊숙이 박혀서 제 사고와 행동의 기준이 되어 왔지요. 그리고 20대 후반인 지금에 와서는 더이상 이들이 삶에 예전만한 영향력을 가지지는 않지만 혹시라도 (예전에 저에게 그랬던 것처럼) 보시는 분들에게 힘이 될 수 있을까 하여 포스팅해 봅니다. "젊음의 가치는 질주하는데 있다." 이 문장는 고등학교 시작 무렵에 무척 좋아했던 친구의 반 표어였는데 처음 듣던 순간 머릿속에 종이 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 후로 죽 삶의 가장 강력한 행동강령이 되지 않았나 합니다. 질풍노도의 시기인 사춘기의 설명 못할 사고와 행동에 어떤 정당함을 느끼게 해주었고, 시간이 지나서는 두려움이 있을 때마..

최초의 기억

나는 기억을 많이 하고 사는 편이다. 기억하고 있는 최초의 순간부터 현재까지, 물론 상당한 왜곡이 있겠지만, 시간 순으로 나열이 가능하다. 사람이름을 기억하는 데는 시원찮으나 서사나 이미지는 상당히 세세히 기억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든가 가장 소중 기억을 들라고 하면 상당히 난감하다. 30년 가까이 살아온 나날들, 그리고 순간순간이 그렇게 쉽게 추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느 특정 시점의 기억을 환기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 수도 없이 누적되어 있는 기억의 파편들 중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최초의 그것은 외가댁 안방 한구석에 있던 외할아버지의 병석이다. 내가 기어 다니기 시작했을 때 외할아버지께서는 이미 많이 편찮으셔서 방한구석에 병석을 만들어두고 링거 주사를 맞으시다가 내가 ..

나도 멘토가 있었으면 좋겠다.

몇년 전에 "내 인생최고의 멘토" 와 "10년 후" 를 함께 읽고서 인생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리 어렵거나 장황한 책은 아니었지만 나라는 존재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부수는계기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늦은 감이 있었지만 '늘 가까이 하며 배울 수 있는 사람', 멘토의 필요성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매년 올해의 목표에는 ‘멘 토 만나기’ 가 늘 올라 있었지만 이민생활을 시작하며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려웠고, 만나는 사람들이 제한되어 있어서이루지 못한 채 다음해로 넘어가는 항목이 되어왔다. 플로리다에 있을 때에는 대학도시에 살았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이 동생들이었고 알고 지내던 교수님들은대부분 이공계여서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 만약에 경영학교수를 한 분이라도 만날 수 있었다면 얘..

편지쓰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

나이가 들수록 편지쓰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다. 초딩 때부터 중고시절 그리고 군대까지 편지를 쓰는 것은 나에게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그것이 연애편지이든 친구에게 쓰는 안부편지이든 크리스마스 카드이든 간에 한장 한장 써내리는 것이 그렇게 행복하고 신이 날 수가 없었는데 요즘에는 생일카드 한장 쓰는 것도 한참을 생각해야 몇줄을 써내리곤 한다. 편지를 쓰기 시작하면 보통은 4-5장 많게는 15-20장 정도를 쓰곤 했는데 무슨 할말이 그리 많았는지 돌이켜보면 참 놀라울 따름이다. 얼마 전에 한국에서 사촌동생이 몇 년 만에 뜬금없이 전화를 했다. 7-8년 전에 내가 저한테 보낸 장문의 편지를 책상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단다. 어찌 그리 구구절절하게 마음을 가득히 담아서 편지를 쓸 수 있었냐고 물어보더라. 형제..

당신들을 사랑하지 않는 이상, 당신들의 삶에 연루되고 싶지않다.

일부 한국사람들은 같이 살아가기가 정말 어렵다. 조금만 친해지면 시도때도 없이 연락을 하고, 염치없는 부탁을 서슴치 않고, 마치 자기가족이나 되는양 아무 거리낌 없이 대하고, 심지어는 자기네 머슴인양 휘두르려는 사람들이 있다. 도를 지나친 혹은 선을 넘어선 친근함의 표현 혹은 영향력의 과시인가? 내가 생일을 챙겨주고 일년에 두세번씩 연락을 하는 친구들은 나와 정말 가까운 친구들이다. 그들은 아무리 나와 가까워도 부탁을 아끼고 의견피력에 조심스럽다. 내가 까탈스러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런 친구들만 남아서 그렇다. 스스럼 없이 지내면서도 서로 존중을 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면 기꺼히 도와주거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그런 관계는 물론 쉽사리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간과 신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진정한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