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군/느낌 생각 기억

K군, 뉴욕에 다녀가다

Y군! 2009. 2. 22. 15:14

내 블로그에 자주 등장하는 절친한 형이자 둘도 없는 친구인 K군이 다녀갔다. 사실 다녀갔다라는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어려운 걸음을 한거다. 서울에 사는 사람이, 직장생활 하면서 받은 첫번째 장기휴가에, 100만원이 넘는 비싼 비행기표를 사서, 뉴욕으로 친구내외를 보러 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걸음인지 짐작조차 못하겠다. 어려운 걸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기는 하지만.. K군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그리고 고마운 사람이다. 마음 편히 기댈 수 있는 친구나 친지 하나 없는 미국에서 3년 반 동안 살아오는 동안 이렇게 미국으로 나를 보러 온 사람은 K군이 처음이다. 여행이나 출장으로 뉴욕에 머무는 동안 잠시 얼굴을 본 친구들이야 몇명 있었지만 이곳이 한국에서는 거의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매우 먼 곳이다.

K군이 머문 일주일 동안 거의 일을 못하는 바람에 지난 주는 블로깅도 못하고 시간에 쪼들리며 밀린 일을 해야했지만 그 일주일이 일년치 이상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채워준 것 같다. 지난 세월 동안 아내가 언제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었지만 가장으로서 그리고 남자로서 아내와 나눌수 없는 것들이 꽤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남자라서 미국인에서 나고 자란 아내의 멘탈리티 혹은 정서로는 메우지 못하는 여러가지 공백들이 존재하는데 이런 부분은 역시 K군 같은 오랜 지인들이나 채워줄 수 있는 것 같다.

일주일간 허니문 못지 않은 콸리티 높은 시간을 보냈다고 하면 과장일까? 전화로는 도저히 할 수 없을, 다양한 주제의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 동안 서로 다른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오면서 느끼고 배운 것들을 나누면서 서로에게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눈빛만 봐도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만큼 오랜 친구와 짧막한 대화로 깊은 나눔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이런 외국 생활을 하면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즐거움이자 대단한 사치이다. 게다가 단순함과 줄임의 미학이 가득한 경상도 사투리를 어디서 그렇게 써볼 수 있겠는가.^^

지나온 시간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새로움에 대한 적응이 아니라, 변해가는 나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내 속을 보여줄 수 있고 그 허물을 바로잡아 줄 수 있는 관계는 고작 3년 정도로 거저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특히 걱정을 많이 했던 부분이 내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온 그 시점에서 내 내면의 성장이 멎어버렸거나 줄어들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당연한 것이 이것은 책 읽고 공부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진행되는 것이기에 교포사회도 아닌 2, 3세 및 non-Korean들 사이에서 미국생활을 해온 나에게 취약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이번에 K군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제대로 확인한 것이 2가지 정도 있는 것 같다. 첫째, 나도 나름대로 많이 자란 것을 확인했다. 나이만 한국 나이 서른이 된 것이 아니라 정신연령도 서른 즘에 와 있는 것 같다. 이건 K군과만 직접적으로 비교한 것이기 때문에 K군의 정신연령이 30대 미만이면 낭패다.^^; 그렇지만 내가 아는 K군은 언제나 앞서가는 사람이다. (그는 애늙은이 구석이 좀 있다.ㅎㅎ) 둘째, 내 정체성에 대한 확인을 했다. 20대 후반에 미국에 오기는 했지만 한인 교포 사회에서 한국사람으로 살지 못하고 미국 친구들과 미국사람으로 오래 살았더니, 미국 사람들과도 완전히 어울리지 못하면서 한국 분들과 있으면 이질감을 느끼는 등 내가 누구인지 햇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 한국인, 이민사회, 재미교포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리고 K군에게 나 자신을 비춰보면서 내가 가진 묘한 위치를 정리할 수 있었다. 딱 잘라서 정리하기는 대단히(!) 어렵지만, 나는 미국물을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이 먹어서 배탈이 난 한국 사람이다. (이 부분은 나중에 정리해서 포스팅 할 예정이다.)

프리랜서의 장점을 한껏 살려 일주일간 실컷 놀고서 K군을 보내는 날 아침, 발작적으로 여러번 눈물이 날 뻔 했다. 친구가 많이 그리웠었나보다. 십몇년 전에는 대입시험 100일 전이라고 서울서 부산까지 내려와서 피자를 사주던 그 동네형이 이번에는 뉴욕까지 와서 맛있는 음식을 실컷 사주고 갔다. 나만 잘하면 된다며 미국으로 훌쩍 떠나버린 나같은 사람에게 과분한 인복이다. 내가 이 친구한테 받은 만큼 되돌려 주기는 평생 어려울 것 같고 나도 다른 사람한테 이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늦게 마신 커피 덕에 잠도 안오는데 한국에 전화나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