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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군의 마력

Y군........ Y군을 알아온지도 벌써 9년차가 되가네요. Y군에게 게스트로 글을 써 보라는 제안을 받고 무엇에 관한 글을 쓸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Y군과 내가 왜 친한가에 대해 궁금해 지더라구요. 뭐 이건 가끔 Y군과 저를 동시에 알고 있는 친구들 사이의 미스테리이기도 합니다. 왜냐,사실 우리는 대학때 같은 과이기 때문에 알게 되었고, 딱히 둘이서 만나 같이 놀러 다닌 추억도 없고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를쓰고 같은 강의를 들으면서 공부를 한적도 없는, 한마디로 별로 인연이 없는 사이더라구요. 아! 단 하나 기억나는 추억이라면 뭐 그닥 친하기전, (단순한 대학 과 친구의 수준?) 저에게 미팅이란 걸 처음 알려 준 친구죠. 신림동 동막골이었던가? 본인은 기억..

기타 & 미분류 2007.11.01

외국인에게 길을 가르쳐 줄 때 알면 좋은 몇가지

한국에 있을 때 저는 종종 외국인 친구들과 한국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제가 보는 한국과 외국인들이 보는 한국이 사뭇 다를 때가 많았는데요, 미처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기도 하고 부끄러운 부분을 알게 되거나 혹은 오해를 풀어주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지요.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요, 외국인들이 길을 찾을 때 한국사람들이 도와주는 것을 무조건 달가워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지요. 문화적인 차이나 언어적인 한계 때문인 경우가 많았는데요, 기분이 매우 상하거나, 오히려 더 햇갈리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고 하더군요. 도움을 주려는 좋은 의도인데 받는 사람 입장에서 무슨 불만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같은 한국사람들끼리도 예절을 지키며 도움을 주고 받는..

고2 어느 여름밤 느꼈던 공포 그리고 K군

지금은 나에게 누구보다도 소중한 형이자 친구인 K군이란 사람이 있다. 나보다 1년 일찍 학교를 들어간 탓에 내가 고2 때 고3이었던 K군은 정말 독특하고 재밌으면서도 배울 점이 넘치는 선배였다. 너무 죽이 잘 맞은 탓에 의형제까지 맺어버린 이 사람이 그 해 여름 평생동안 잊지 못할 (=두고두고 놀려먹을) 에피소드를 만들어주었다. 한국의 여느 고등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학원으로, 학원이 끝나면 독서실로 직행하곤 했는데 독서실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는 늘 새벽 2시가 넘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시간까지 공부를 하면서 깨어있다는 것도 대단했지만 그 늦은 시간에 가로등만을 의지해서 20분 가량을 혼자서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왔다는 것이 더욱 놀랍다. 공부한답시고 밤 늦도록 무리지어..

20대 후반 가을, 내 인생의 turning point

한동안 포스팅이 뜸했습니다. 많이 바빴거든요. 시간이 터무니 없이 부족하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또 그만큼 따라잡아야 했기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없었을 뿐이지요. 얼마 되지 않는 RSS 독자들도 5분 정도 잃어버렸네요. 포스팅은 짧은 말로 채우겠습니다. 삶에 아주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백수생활을 접고 완전히 새로운 경력을 시작하는 것뿐만 아니라 삶의 자세가 크게 변하고 있다. 웹 기획이라는 새로운 동시에 매우 익숙한 분야로 들어가기 위해 회계라는 파트타임 일을 시작했고 남는 시간에는 웹 프로그래밍 공부를 시작했다. 삶의 자세가 변했다함은 한동안 익숙하지 않은 현실에 움츠려 들었던 도전과 모험에 대한 용기를 되찾았다는 것이고 세상은 나를 향해 열려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온몸..

젊은 이민자가 젊은 이민 예정자에게 보낸 편지

포스팅할 여유가 없어서 자꾸 꽁수를 쓰게 되는군요. 벌써 1년 전 일이군요. 한국에서 제 블로그를 자주 읽으시던 어느 분께 이메일을 한통 받았습니다. 미국에 이민을 생각하고 계신 젊은 남자 분이셨는데 본인은 대기업에서 직장생활을 잘 하고 계시다가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이민을 결정하신 분이셨지요. 젊은 나이에 결혼을 하셨고 전폭적인 지지와 경제적인 능력까지 있는 아내가 있다는 점 말고도 인생을 질러봐야 안다는 삶의 철학(?)이라든가 사소한 생활패턴 등을 비록해서 운전병 출신이란 점까지 그 분과 저는 비슷한 점이 참 많았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저는 이미 와버렸고 그 분은 올 준비를 하신다는 것이었지요. 이분은 와이프께서 미국에서 취업을 하시게 되었는데 그것에 모든 것을 걸고 과감하게 삶의 터전을 미..

편견과 이분법에 치우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 북미를 이해하는 잘못된 관점

저를 비롯해서 종종 외국에 계신 분들의 글들을 읽다가 보면 종종 그 분이 있는 지역의 문화나 특성에 대해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나라는, 이 나라 사람들은, 혹은 이 나라의 문화는 이러이러하다.' 라고 단정을 내리는 경우이지요. 물론 다른 시각으로 보는 분이 반박을 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글을 쓴 분이 많은 방문자와 구독자와 함께 블로고스피어 혹은 웹 상에서 영향력을 가진 분이라면 읽는 이로 하여금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뿌리 깊은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지게 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 되기도 합니다. 다른데 볼 것 없이 제 자신이 그런 오류가 있는 글을 쓸 때가 많기에 스스로에게 경종을 울리고 방문하..

뉴욕 여행 첫날 가이드 - 뉴욕을 보러오는 친구에게 쓰는 편지 01

지난 번에 편지를 쓰는 것과 포스팅을 하는 것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번에는 편지로 쓴 글을 포스팅해 올려봅니다. 이달 말에 한국에서 친구가 뉴욕으로 열흘 가량 여행을 오게 되는데 여행을 하기에 참고할 만한 이야기를 좀 들려달라길래 마침 블로그에 한번 쯤 정리해서 올릴 내용이라 조금 더 열심히 써보았습니다. 형식은 친구에게 편하게 쓴 편지형식 그대로입니다만 꼭 나누고 싶은 내용이라 약간의 가감을 거친 후에 그대로 올립니다. 9월 말에 열흘씩이나 뉴욕을 여행하러 온다니 정말 좋은 시간을 잘 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름에 뉴욕은 열섬현상과 골목이나 지하철에서 풍기는 썩는 냄새 때문에 그야말로 끔찍할 수 있는 관광지이고 겨울은 한국과 비슷한 추위와 함께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블리자드(눈폭풍)도 종종 불어..

여행, 여행기 2007.09.10

잡담: 블로그에 글을 쓴다는 것

나는 타고난 글쟁이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블로그에 글을 쓰는 데는 참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글감이 떠오르면 얼른 메모를 해놓고 이삼일 이상을 생각하다가 머릿속에 가닥이 어느 정도 잡히면 그제서야 키보드에 속도감을 실을 수 있다. 그리고서 나오는 글들도 얼개는 물론이고 문장, 문단, 표현 등에 엉성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지만 다 뜯어고치기에는 일이 너무 많아 그냥 올리고 만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으로 졸필이다. 오래 전에 편지를 즐겨쓰던 시절이 있었다. 늦은 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써내리다 보면 편지지 몇 장은 금새 채워지곤 했다. 그러나 감성에 젖어 써내린 글들은 아침에 이성을 가지고 읽을 때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기 때문에 밤에 쓴 편지는 보내기 전에 겉봉에 두꺼운 사인펜으로 밑줄까지 그..

웹과 나 2007.09.05

그린카드가 도착하다

신청한지 약 2년만에 그린카드(Permanent Resident Card)가 도착했습니다. 우편함에서 꺼낸 편지에서 내용물을 확인하자마자 먼저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되더군요. 1년도 전에 받았어야 할 그린카드를 우여곡절 끝에 이제서야 받아보게 되니 그간의 불평 불만이 다 날아가고 그저 기쁠 따름입니다. 일단 그린카드, 즉 미영주권을 취득했다는 하나 아직 끝난게 아니랍니다. 영어로 Permanent Residency 인데 그 앞에 조건부, 즉 Conditional 이라는 단어가 하나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1년간 아무 사고 없이 미국에서 잘 지내고 나면 발급일로부터 1년 후가 되기 90일 전에 2년이 되기 전 90일간 조건부(Conditional)이라는 글자를 때어내야 합니다. 물론 그 때는 여태까지처럼 ..

달래밭을 보지 못하고 달래만 보았더라

어린 시절 나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책가방을 던져 놓은 채 곧장 뒷산으로 달려가곤 했다. 숫기가 없었던 나는 혼자서 혹은 친한 친구 한둘을 데리고 풀, 벌레, 나무 등 자연을 관찰하고 놀기를 좋아했었다. 그래서 시골에 놀러가면 집 뒷산에서 못보는 자연환경에 설레이곤 했었다. 그 시절 나는, 미국에 사는 지금은 구경조차 하지 못하는, 달래를 참 좋아했다.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달래무침은 매콤한 양념과 상콤한 달래향으로 봄과 함께 기다려지는 우리집 특미였다. 내가 8살인가 9살이었을 때, 여느 때와 같이 뒷산으로 놀러간 나는 땅속에 숨어 있는 달팽이를 찾다가 달래 몇뿌리를 발견했다. 신이 나서 캐어간 달래로 어머니께서는 뒷산에도 달래가 있더냐 신기해하지며 한줌 밖에 되지 않았지만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