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나에게 누구보다도 소중한 형이자 친구인 K군이란 사람이 있다. 나보다 1년 일찍 학교를 들어간 탓에 내가 고2 때 고3이었던 K군은 정말 독특하고 재밌으면서도 배울 점이 넘치는 선배였다. 너무 죽이 잘 맞은 탓에 의형제까지 맺어버린 이 사람이 그 해 여름 평생동안 잊지 못할 (=두고두고 놀려먹을) 에피소드를 만들어주었다.
한국의 여느 고등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학원으로, 학원이 끝나면 독서실로 직행하곤 했는데 독서실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는 늘 새벽 2시가 넘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시간까지 공부를 하면서 깨어있다는 것도 대단했지만 그 늦은 시간에 가로등만을 의지해서 20분 가량을 혼자서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왔다는 것이 더욱 놀랍다. 공부한답시고 밤 늦도록 무리지어 있는 것도 재밌었고 부산의 외곽지역이라 안전하기도 했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새벽 2시에 독서실을 나와 완전히 잠든 적막한 거리를 홀로 걸으며 집으로 가고 있었는데 누가 내 이름을 부르고 것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반가운 K군의 얼굴이 어두운 가운데 보였다. 고된 고3 여름을 보내고 있는 K군도 이제 막 공부를 마쳤는지 홀로 걸어가는 나를 알아보고는 열심히 오르막길을 뛰어오고 있었다. 같이 집에 가겠다고 무거운 책가방을 등에 지고는 헉헉 거리면서 뛰어오는 K군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별안간 그의 전신이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것도 내 코 앞에서!! 너무 놀라 어리둥절해진 나는 K군의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대답하는 이는 없고 나는 그만 완전히 얼어버렸다.새벽 2시에 컴컴한 밤거리에서 반갑게 웃으며 달려오던 사람이 눈앞에서 증발해 버린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놀라지 않을까. 하얗게 질린다는 말이 그런 상황에 쓰는 말이리라.
바짝 졸은 내가 잠시 후 발견한 상황은 다음과 같다.
K군은 하수도 구멍에 한쪽 다리가 빠져서는 일자로 죽 긁힌 다리가 아파서 빠져나오기는 커녕 신음소리도 내지 못하고 엎어져서 끙끙거리고 있었다. 길이 경사져서 위쪽에서 아래쪽을 봐야했기에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보였고 나도 쉽게 알아차리지도 못했던 것이다. 불쌍한 K군은 어두운 오르막길을 뛰어오르다가 장마로 닳아서 넓어진 하수도 구멍에 그만 한쪽 다리를 통째로 빠뜨리면서 짧지만 낙하를 해버린 것이었다. 긁힌 데서 피가 나고 너무 아파서 순간 신음소리도 못내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으니 내가 불러도 대답을 못했을 수 밖에... 웃을 상황이 아닌데 너무 웃기고 부끄러워서 온동네가 깨도록 둘이서 한참을 웃었다. 나는 찰나였지만 일생동안 잊지 못할 공포를 느꼈기에, K군은 어디다가 이야기하지 못할 황당한 실수였기에 기가 막혀서 웃었다.
세월이 지나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하나씩 기억에서 사라져 가는데 이렇게 블로그에 기록으로 남겨두면 평생 기억하고 웃을 수 있겠다. 여태 10년이 넘게 누구에게 이야기하지 않았고 익명으로 올렸으니까 K군이 칼들고 달려오지는 않겠지. 일주일이 멀다하고 국제전화를 해주는 고마운 K군이니 블로그에 헌정(?) 포스팅을 해본다.
한국의 여느 고등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학원으로, 학원이 끝나면 독서실로 직행하곤 했는데 독서실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는 늘 새벽 2시가 넘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시간까지 공부를 하면서 깨어있다는 것도 대단했지만 그 늦은 시간에 가로등만을 의지해서 20분 가량을 혼자서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왔다는 것이 더욱 놀랍다. 공부한답시고 밤 늦도록 무리지어 있는 것도 재밌었고 부산의 외곽지역이라 안전하기도 했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새벽 2시에 독서실을 나와 완전히 잠든 적막한 거리를 홀로 걸으며 집으로 가고 있었는데 누가 내 이름을 부르고 것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반가운 K군의 얼굴이 어두운 가운데 보였다. 고된 고3 여름을 보내고 있는 K군도 이제 막 공부를 마쳤는지 홀로 걸어가는 나를 알아보고는 열심히 오르막길을 뛰어오고 있었다. 같이 집에 가겠다고 무거운 책가방을 등에 지고는 헉헉 거리면서 뛰어오는 K군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별안간 그의 전신이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것도 내 코 앞에서!! 너무 놀라 어리둥절해진 나는 K군의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대답하는 이는 없고 나는 그만 완전히 얼어버렸다.새벽 2시에 컴컴한 밤거리에서 반갑게 웃으며 달려오던 사람이 눈앞에서 증발해 버린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놀라지 않을까. 하얗게 질린다는 말이 그런 상황에 쓰는 말이리라.
바짝 졸은 내가 잠시 후 발견한 상황은 다음과 같다.
K군은 하수도 구멍에 한쪽 다리가 빠져서는 일자로 죽 긁힌 다리가 아파서 빠져나오기는 커녕 신음소리도 내지 못하고 엎어져서 끙끙거리고 있었다. 길이 경사져서 위쪽에서 아래쪽을 봐야했기에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보였고 나도 쉽게 알아차리지도 못했던 것이다. 불쌍한 K군은 어두운 오르막길을 뛰어오르다가 장마로 닳아서 넓어진 하수도 구멍에 그만 한쪽 다리를 통째로 빠뜨리면서 짧지만 낙하를 해버린 것이었다. 긁힌 데서 피가 나고 너무 아파서 순간 신음소리도 못내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으니 내가 불러도 대답을 못했을 수 밖에... 웃을 상황이 아닌데 너무 웃기고 부끄러워서 온동네가 깨도록 둘이서 한참을 웃었다. 나는 찰나였지만 일생동안 잊지 못할 공포를 느꼈기에, K군은 어디다가 이야기하지 못할 황당한 실수였기에 기가 막혀서 웃었다.
세월이 지나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하나씩 기억에서 사라져 가는데 이렇게 블로그에 기록으로 남겨두면 평생 기억하고 웃을 수 있겠다. 여태 10년이 넘게 누구에게 이야기하지 않았고 익명으로 올렸으니까 K군이 칼들고 달려오지는 않겠지. 일주일이 멀다하고 국제전화를 해주는 고마운 K군이니 블로그에 헌정(?) 포스팅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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