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편지쓰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다. 초딩 때부터 중고시절 그리고 군대까지 편지를 쓰는 것은 나에게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그것이 연애편지이든 친구에게 쓰는 안부편지이든 크리스마스 카드이든 간에 한장 한장 써내리는 것이 그렇게 행복하고 신이 날 수가 없었는데 요즘에는 생일카드 한장 쓰는 것도 한참을 생각해야 몇줄을 써내리곤 한다.
편지를 쓰기 시작하면 보통은 4-5장 많게는 15-20장 정도를 쓰곤 했는데 무슨 할말이 그리 많았는지 돌이켜보면 참 놀라울 따름이다. 얼마 전에 한국에서 사촌동생이 몇 년 만에 뜬금없이 전화를 했다. 7-8년 전에 내가 저한테 보낸 장문의 편지를 책상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단다. 어찌 그리 구구절절하게 마음을 가득히 담아서 편지를 쓸 수 있었냐고 물어보더라. 형제자매가 없이 자라다 보니 정이 많아서 사람들에게 편지를 쓸 때 속 깊은 이야기를 많이 하고는 했다.
제대를 하고 복학을 했을 때까지만 해도 편지를 많이 썼는데 지금의 아내와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 편지쓰기에 대한 개념이 바뀌기 시작한 것 같다. 당시 '여친'이었던 아내는 미국서 태어나고 자란 교포2세였는데 우리말도 거의 못하고 한글은 아예 모르는 상태였다. 그런데 내 영어수준은 결코 장문의 편지를 쓸 만큼 출중하지 않았으니 편지는 커녕 만나서 대화하는 것도 버거울 정도였다. 워낙 자신이 없어서 도통 카드나 편지를 쓰지 않았었는데 그 때 이후로 조금씩 편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시작한 것 같다. 이때 영어로 편지 쓰는데 열을 올렸으면 아마 내 영어에 엄청난 발전이 있었을테지만 예비역 오빠, 학점 매꾸랴 연애하랴 정신 없는데 영어편지는 꿈도 못꾸었다.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서 시간이 부족해 지고 자기개발이다, 여가생활이다 해서 편지를 쓸 시간마저 줄어들었다. 게다가 홀로 외국에 떨어져 나와 살고 있고 늘 삶의 우선순위를 차지하는 가족이 있다 보니 점점 더 지인들과 소원해져서 할말도 없어져 간다.
요즘엔 편지를 쓰려고 펜을 잡는 것보다는 간단한 이메일이나 전화를 더 많이 이용한다. 다행히 미국 사람들은 카드로 소소한 축하와 감사, 위로 등을 많이 하는 편이라 이 게으름이나 어색함이 어느 정도 커버되는 것 같다. 그런데 카드에 상품권이나 개인수표가 안 끼어 있으면 그 정성이 많이 반감된다는 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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