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생일을 맞아서 그리고 good deal의 할인티켓이 있어서, 아내가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시즌 관람권을 선물로 구입해줬다. 물론 할인권이라고는 하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았고 (서울서도 예술의 전당보다는 수원에 있는 경기도문화회관을 더 많이 이용했는데…) 생계가 막연한 미국 생활을 하며 짠돌이가 되어버린 나로서는 고맙기도 했지만 상당히 부담스러운 선물이었다. ^^;
3번의 연주회를 보러 갈 수 있는 패키지였는데 이미 시즌이 시작된 후라 내가 좋아하는 음악가들의 연주회는 이미 매진되어 버렸고, 그 덕분에 비교적 실험적이고 모던한 클래식 음악을 접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물론 나는 그쪽으로는 문외한이다.
생일날 관람한 첫번째 연주회는 ‘와호장룡’, ‘영웅’ 등으로 유명한 중국이 자랑하는 음악감독인 ‘탄둔(Tan Dun)’이 뉴욕 필하모닉의 특별 의뢰로 또 다른 중국이 자랑하는 천재 피아니스트 ‘랑랑(Lang Lang)’을 위해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Hear & Now presentation: Piano Concerto)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날이 이 협주곡의 초연이었다. (훗날 명작-mater piece로 평가 받을지도 모르는 곡의 탄생을 지켜보는 것은 나름 큰 영광인 것 같다)
내가 종종 놀라가는 림님의 블로그에서 익히 들어서 김선욱이라는 천재 피아니스트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이 랑랑이라는 친구도 정말 굉장했다. 지난 3년을 클래식 음악을 끊고(!) 살았던 탓에 ‘누가 누가 잘하나’에는 아는 바가 없지만 이 랑랑이라는 피아니스트는 피아노를 상대로 정말 무술을 할 만큼 풍부한 감정과 기교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언젠가 방한한 뉴욕필을 보면서 느낀 그 웅장함, 그 섬세함을 그대로 들려주는 오케스트라의 훌륭한 연주와 더불어 3악장의 짧지 않은 연주가 끝나고 나니 한편의 잘 만들어진 중국 무술영화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동서양인을 막론하고 기립박수는 끊어지지가 않았다. 과연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천재 작곡가다.
한국에서 자랐고 무협영화나 중국영화/드라마를 보면서 자란 나에게 음악 자체는 많이 익숙했기에 미국의 청중들처럼 열렬한 찬사를 보내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큰 감동과 영감을 받았다. 그 이유는 중국의 시골에서 나고 자라 어려서부터 서양에서 음악공부를 하지 못한 Tan Dun 같은 음악가가 동양의 전통적인 소재를 미국(서양)에 기가 막히게 전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20대 후반에 미국에 건너와서 약 10년 만에 미국을 음악으로 계속해서 감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연주가 시작되기 전에 작곡가가 어떤 의도로 이 곡을 만들었는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간단히 설명하는 부분이 있었다. 작곡가 Tan Dun은 동양의 전통적인 소재인 ‘물과 불’ 즉 음양의 이치를 서양에도 친숙한 무술(martial art)의 움직임을 표현한 음악에 담아보고자 했고, 그 때문에 손가락, 손날, 주먹, 팔꿈치 등 무술을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인체부위와 그 움직임을 피아노로 표현했다고 한다. 내 생각에는 이런 그의 생각이 매우 잘 전달되었다고 본다. 그것을 확인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기립박수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히 보았다. 조국의 자랑스러운 얼굴을 보러 온 중국계 청중들보다도 백인/흑인을 포함한 서양의 백그라운드를 가진 청중들이 먼저 일어나 열렬히 환호하는 것을 말이다.
자주 오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요즘 하는 일이 한국의 웹서비스를 미국에 들여오는 일이다. 이미 있는 그대로 정말 뛰어나고 특별한 서비스이지만 현지인들에게 소개하고 사용자들을 확보하기 위해서 내공이 출중한 분들과 함께 현지화(localization) 작업을 하고 있다. Tan Dun의 피아노 협주곡이 이 일을 하면서 늘 고민하는 일들에 많은 영감을 준다. 적어도 미국의 문화코드를 대표하는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음악상을 수여했고, 저 이름 높은 뉴욕 필하모닉에서 작곡을 의뢰할 정도인 음악가이니 분야는 다르지만 벤치마크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1. 음과 양이라는 아직도 서양에서는 매우 생소한 주제를 익숙한 서양식 악기와 연주형식으로 표현했다.
→ 미국시장이 아직까지 익숙지 않은 개념을 가지고 들어가는 만큼 미국에서 익숙하게 사용하는 표현(용어포함)과 디자인(UI, UX 포함)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어설프지 않은 확실한 현지화)
2. 중국 전통악기의 소리를 서양 오케스트라 악기로 거의 완벽하게 재현해 냈다.
→ 한국적인 시각으로는 지나치게 단순하고 무척이나 다르게 보이는 미국의 웹이지만 이를 통해서도 한국에서부터 준비하고 실행하던 서비스의 본질을 재현해 낼 수 있다. (본질을 잃지 않는 현지화)
3. 주연배우급인 피아노 연주자가 무협영화 주인공처럼 시선을 집중 받으며 온몸으로 피아노를 연주했다.
→ 대표 서비스나 대표 기능 한가지는 모든 사용자가 완전히 이해하고 매혹되도록 확실하게 보여주고 브랜드화한다. (대표 서비스/기능의 차별화된 브랜딩)
4. 피아노를 독주악기로 쓰면서도 현악기와 관악기를 결코 빠지지 않는 조연급으로 잘 써내어서 피아노 연주 부분 이외에서도 청중의 관심과 집중을 놓지 않았다.
→ 대표 서비스 못지 않게 나머지 주요 기능들도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사용자들이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있어서 싫증을 느끼지 않도록 한다. 한두가지 주요기능의 얕은 서비스가 아닌 쓰면 쓸수록 쓰임새가 많은 서비스임을 자연스럽게 알린다. (전체 서비스의 초점을 흩트리지 않는 부가서비스의 노출 및 브랜딩)
의도하지 않게 무척 긴 포스팅이 되었다. 억지가 심한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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