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주간 4명의 손님이 저희 집에서 순차적으로, 때때로 함께 장기투숙을 했습니다. 오늘 아침 마지막 손님이었던 막내 처남을 공항에 태워주고 마침내 가정의 평화(?)를 찾았습니다. 보름 가량 정말 아무일도 하지 못했는데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서 6월도 거의 다 갔습니다. 따라잡아야 할 일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그 전에 잠깐 정리를 해봅니다.
와이프의 제일 친한 고등학교 친구가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출장을 오면서 주말을 끼고 함께 어울렸습니다. 이 친구는 비영리법인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그 법인의 주업무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미국의 상위 인문대학교에는 유색인종이나 소수인종이 잘 진학하지 않는 경향이 있고 설사 그들이 진학을 하더라도 주변 환경이나 학생들과 어울리지 못해 낙오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학 측에서는 학교와 학생의 다양성이 대학존립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이런 학생들을 유치하고자 하지만 그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답니다. 그 법인은 전국 대도시의 유색인종과 소수인종 고등학생들 중 우수한 학생들을 뽑아 이들 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해주고 학교를 마칠 때까지 재정지원 및 상담을 비롯해서 모든 가능한 지원을 해준다고 합니다. 물론 모든 운영비용은 개인 기부와 대학들의 기부금으로 충당된다고 하는데 그 규모가 수십억원 수준이었습니다. 한 법인이 오직 대학의 다양성을 위해서 존재하고 수십억원의 기부금이 모인다는 이야기에 상당히 놀랐습니다. 또한 인종간의 위화감이나 명문대학들의 학생유치열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두번째로 방문한 친구는 제가 학생시절 University of Florida에 잠깐 머물 때 저와 방을 같이 쓴 동생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 중 한 명이고 제 결혼식에서 4명의 Groom's men (신랑의 남자들?) 중 한 명이었지요. 학부 때 열심히 공부를 해서 의대에 진학했는데 진학 당시 면접관에게 저와 우정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해준 것이 주효했다며 늘 고마워 하는 약간 엉뚱한 구석이 있는 친구입니다. 1년간의 인턴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저희집을 방문했는데 머무는 동안 의과대학생 아니랄까봐 해부학 이야기를 많이 해줘서 상당히 흥미로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물론 비위도 좀 상했습니다. 특히 직장 검사 이야기는 압권이더군요.
세번째로 방문한 친구는 역시 예전에 저와 한집에 살았고 제 결혼식의 best man (신랑 최고의 친구?) 이었던 동생입니다. 결혼식 하면 꼭 best man시켜 달라고 노래를 부르길래 (다른 후보들도 많이 있었지만 다들 한국에 있어서) 정말 best man을 시켜줬더니 은행에서 융자까지 내어 제 결혼식을 챙겨준 고마운 동생입니다. 이제 막 조지아택에서 석사학위와 MBA을 동시에 수여하고 D.C.에서 좋은 직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Atlanta에 있을때는 너무 멀어서 못 왔는데 D.C.에 오니 겨우 4시간 거리라며 아파트를 구하자마자 운전해서 올라왔더군요. 저희 집에 머무는 동안 핸드폰을 실수로 세탁기에 넣고 돌렸는데 며칠을 끙끙 앓고 못 고치길래 제가 헤어드라이어로 말려서 고쳐줬습니다. 재밌는건 이 친구 전공이 전자공학이라는 거지요.
네번째로 방문한 친구는 제 처남입니다. 늦둥이로 태어나 이제 고등학교 4학년이 되는데 대학입시를 앞두고 동기부여를 위해 대학구경을 왔습니다. Princeton, Columbia, Yale 등 아이비리그 대학도 보고 NYU도 봤습니다. 방학이라 그런지 대학마다 정기적으로 입시설명회나 학교투어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더군요. 특히 유서 깊은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학교의 커리큘럼이나 교수진도 정말 우수하지만 캠퍼스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지난번에 하버드의 캠퍼스를 보고 살짝 실망을 했었는데 예일대학교나 프린스톤대학교는 입이 딱 벌어질 만큼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물들이 많았습니다. 제일 마지막으로 방문한 NYU의 캠퍼스를 보고 처남이 학교가 아닌것 같다고 말했는데 정말 그런 생각도 들더군요. (사실 저는 NYU같은 도시캠퍼스를 좋아합니다.) 과연 얼마나 동기부여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좋은 학교 못가면 제가 가만 두지 않을 겁니다. 일주일간 아무것도 못하고 모시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제 명문대를 봐도 MBA의 비싼 학비가 먼저 떠오르는 것이 예전 같이 가슴이 뛰거나 하지는 않더군요. 그래서 철없는 처남 데리고 다니는게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세 남자가 겹치는 시간이 3일 정도 있었는데 딱 그 3일간 부부살림집이 대학 자취방으로 다운그레이드 되었습니다. 아침에 공항에서 돌아오니 어떻게 정리를 하고 어떻게 청소를 해야할지 도무지 엄두가 안납니다. 수건이란 수건은 다 꺼내 써버렸고 냉장고의 음식은 완전히 거덜났고 어디서 왔는지 모를 먼지가 여기저기 수북히 쌓였습니다. 빨래도 해야하고 장도 봐야하고 청소도 해야하는데 힘이 쭉 빠집니다.
읽으시면서 눈치채셨겠지만 모든 방문객들이 동생들이고 아직 변변한 소득이 없는 친구들이라 형, 누나라는 명분 아래 엄청난 지출을 감행했습니다.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다음달은 파산 혹은 마이너스통장체제입니다. 생계가 막연한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천진난만하게 놀다간 손님들 덕에 구글애드센스를 올릴 명분이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