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본격적으로 빌리지 쪽의 카페들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재택근무가 좋기는 하지만 집에서는 오후 2시에서 5시 사이에 일하는 능률이 거의 제로에 가깝게 떨어지거든요. 창의력이 많이 필요한 일을 할 때는 정말 아무것도 못하고 조금만 단순한 작업이면 졸음이 쏟아지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날씨가 나쁘거나 몸상태가 좋지 않는 한 나가서 일을 합니다. (아니면 아예 생각 없이 일할 수 있는 파트타임 뛰러 갑니다.)
나가서 일을 한다고 해도 아무데서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과는 여건이 또 달라서 공짜 고속 인터넷이 여기저기 널려있지도 않고, 네스팟 같은 와이브로 서비스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찾아다니면서 일을 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저 같은 가난한 재택근무자, 혹은 디지털 노매드가 일하려면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1. 무료 무선 인터넷: 두말 할 것도 없이 제일 중요한 조건입니다. 인터넷 벤처에서 일하는 저로서는 인터넷 속도도 좀 빠르면 더 좋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새로 생긴 한적한 스타벅스가 하나 있는데 아직 인터넷이 들어오지 않았더군요. 이럴 경우, 그림의 떡입니다. 사실 돈만 많으면 Verizon, AT&T, Sprint 등에서 제공하는 3G 인터넷 네트워크을 이용하겠지만 한달에 100불 가량(minimum)을 지출할 엄두가 나지 않지요. (어디서든 빠른 인터넷만 쓸 수 있다면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분위기 좋고 싼데 가서 일하면 됩니다.ㅜㅜ)
2. 좋은 접근성: 노트북 등에 지고 다니는데 여름에 15분 이상 걸으면 탈진합니다. 맥북 에어 같은 컴퓨터를 가지고만 있다면 어디라도 가겠지만 저는 나름 멀티태스킹을 해야 하기 때문에 좀 크고 두꺼운 노트북이 필요합니다. (실은 총알이 부족하지요.ㅡㅡ; 회사가 잘돼서 얼른 지원해주길 기다릴 뿐입니다.ㅎㅎ)
3. 착한 가격: 한번 앉으면 4시간 정도는 기본으로 앉아서 일을 해야 하는데 커피 한잔 사들고 있으면 눈치가 보이는게 아니라 배가 고파서 일을 못합니다. 뭘 싸들고 와도 큰 상관은 없지만 매장에 음식 버젓이 팔고 있는데 도시락 까먹기도 민망하지요. 커피 한잔 시켜놓고 배고프거나 목이 마르면 부담 없이 뭘 하나 더 먹을 수 있는 가격이 좋습니다. 저는 중간 사이즈 커피 한잔이 4불이 미만이면 대략 만족하고 3불 미만이면 행복해 합니다.
4. 전기 콘센트: 아무리 배터리가 오래 간다고 해도 3시간 이상 가질 않지요. 게다가 저처럼 CPU 풀가동해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기본 배터리만 가지고는 2시간 이상 일을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전기 콘센트가 테이블 근처에 하나는 있어야지요. 아무리 자리가 많아도 전기 콘센트가 없으면 앉을 생각도 안합니다. (저는 노트북이 좀 오래 돼서 배터리 수명이 15분이지만 은근히 비싼 추배 살 마음이 없습니다. ㅡㅡ;)
5. 적당한 가게 사이즈: 손님 많은 가게에 혼자 앉아서 몇 시간이고 죽치고 있으려면 상당히 얼굴이 두꺼워야 합니다. 몇 달 카페 등에서 일을 하자니 이 정도 내공은 쌓였는데 문제는 가게가 너무 작으면 눈치가 보여서 그것도 힘들더군요. 종업원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테이블이 있으면 가게 사이즈가 좀 작아도 됩니다.^^;
6. 다른 노매드들: 아무리 위의 조건들이 다 만족되는 곳이라 해도 너무 한적하면 집이나 마찬가지로 졸리기 십상이고, 수다 떠는 손님들이 많으면 너무 시끄러워서 일을 못합니다. 컴퓨터를 가지고 와서 조용히 그리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당히 있으면 일하는 분위기도 나고 능률도 오르더군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카페의 전기 콘센트 숫자만큼(!) 있으면 딱 좋습니다.
7. better and more than Starbucks: 위의 여섯가지 조건을 다 만족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스타벅스입니다. 스타벅스 카드를 사서 등록만 하면 AT&T의 무선 인터넷을 공짜로 쓸 수 있고, 웬만한 동네면 하나씩 있고(뉴욕에는 코너마다 있죠), 한국하고 다르게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고, 전기 콘센트도 있고, 가게 사이즈도 어느 정도는 되고, 일하는 사람들이나 공부하는 학생들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 수도 없이 갔습니다. 스타벅스를 무척 좋아하고, 바리스타 친구가 있을 정도이지만 스타벅스보다 더 좋은 곳도 많이 있답니다. 특히 뉴욕에는 저처럼 사무실 없이 카페에서 혼자 일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그들이 즐겨 찾는 (위의 조건들을 만족하고도 넘치는) 곳이 정말 많습니다. 스타벅스보다 더 맛있는 커피가 있고 스타벅스보다 더 일하기 좋은 곳이면 이들이 모여듭니다.
쓰고 보니 참 까다롭군요. 그래도 이걸 다 만족하는 곳이 꽤 많답니다. 특히 빌리지 쪽의 골목들에 많이 숨어 있는데 하나하나 찾아 다니는 것도 꽤 재밌습니다. 집에서 커피빈을 갈아서 커피를 만들어 마실 정도로 커피를 좋아하는 편인데 새로운 커피를 매번 맛볼 수 있어서 좋고, 다른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보면서 혼자 일하면서 못 느끼는 자극도 많이 받습니다.
뉴욕의 일하기 좋은 곳을 아시면 귀뜀 좀 해주세요. 저도 아직 아는 곳이 그리 많지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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