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과 나

잡담: 블로그에 글을 쓴다는 것

Y군! 2007. 9. 5. 01:25

나는 타고난 글쟁이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블로그에 글을 쓰는 데는 참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글감이 떠오르면 얼른 메모를 해놓고 이삼일 이상을 생각하다가 머릿속에 가닥이 어느 정도 잡히면 그제서야 키보드에 속도감을 실을 수 있다. 그리고서 나오는 글들도 얼개는 물론이고 문장, 문단, 표현 등에 엉성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지만 다 뜯어고치기에는 일이 너무 많아 그냥 올리고 만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으로 졸필이다.

오래 전에 편지를 즐겨쓰던 시절이 있었다. 늦은 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써내리다 보면 편지지 몇 장은 금새 채워지곤 했다. 그러나 감성에 젖어 써내린 글들은 아침에 이성을 가지고 읽을 때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기 때문에 밤에 쓴 편지는 보내기 전에 겉봉에 두꺼운 사인펜으로 밑줄까지 그어서 이렇게 써두곤 했다.
"반드시 어두워진 후에 읽으시오!"

편지는 나와 개인적으로 깊은 교제를 하는 이들과 나누는 매우 폐쇄적이고 독점적인 소통이었기에 이런 식의 문제들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는 것은 이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소통방법이기에 생각할 것이 많다. 나를 모르는, 내 글의 특성을 모르는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된 글을 쓰는 것이기에 쉽게 쓰지 못한다. 처음 내 블로그에 온 방문자가 주인장을 생각이 없는 사람으로 보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고, 그 방문자가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쉽고 확실하게 전달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재는 많아도 포스팅은 쉽지가 않다. 소심할 수도 있고 세심할 수도 있는 이런 글쓰기의 성향이 피곤하기도 하지만 지금은 이런 어려움을 놓아버릴 생각이 없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매일 블로그에 다량의 글이 올라오는 블로그에 경외와 함께 질투가 생길 때가 많다. 어떤 분들은 타고난 문장가들이다. 분명 직업도 있고 매우 바쁘게 살아가는 분들이 짧은 글은 짧은 글 대로 긴 글은 긴 글 대로 강한 임팩트와 깔끔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참으로 멋진 분들이고 닮고 싶은 분들이다. 물론 반대인 경우도 많이 보인다. 생각나는 대로 마치 전화기에 대고 잡담을 하듯이 최소한의 여과만을 거친 문장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기도 한다. 그런 글들이 읽기도 쉽고 재미있기도 하지만 때때로 그 글의 가벼움이 정도 이상이 되면 글쓴이의 존재마저 가벼워 보일 때도 있다. 물론 글쓴이의 스타일이고 글쓴이의 자유로운 표현이니 이해하며 때로는 그런 가벼움에 동조하기도 한다.

본격적으로 RSS 구독기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매일 매일 소화하기 힘든 양의 글들을 받아보고 있다. 이중에는 앞서 말한 두 부류의 블로거들을 비롯해 다양한 성향의 글들이 있는데 이렇게 다양한 분들의 글을 매일 읽다보니 재미도 있고 배움도 많다. 이와 더불어 한가지 작은 즐거움은 내가 좋아하는 글, 내가 쓰고 싶은 글의 성향을 조금씩 알아간다는 것이다. 선택적으로 블로그를 찾아가던 블로깅의 초기에는 몇몇 인상적인 블로거들의 영향을 받아 내 글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글을 쓰기도 했고, 그것에서 벗어나느라 노력을 하기도 했는데 이렇게 다양한 글을 읽다보니 내 글에 대해서도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된다. 블로깅을 시작한지 1년 반 가량 밖에 되지 않았고 포스팅의 수도 100편을 갓 넘겼기에 아직은 글다운 글을 쓰지도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는 글을 쓰고 있으니 여태껏 블로깅 해온 보람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다음과 같은 격언이 있다. "말은 속에 품으면 '뜻(志)'이 되지만 입 밖에 내는 순간 '말(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 된다." 나는 블로그에 내 말을 쓴다. 그리고 그 말은 공기중으로 사라지는 의미 여린 말(言)이 아니라 글로 쓰여지는 내 속에 품은 뜻(志)의 다른 형(形)이기를 바라고 있다. 앞으로 내 글쓰기가 얼마나 더 다듬어지고 미려해질 지는 모르나 오늘 나는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지만 야트막하더라도 깊이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동시에 이런 다짐을 바쳐주기에는 내 글은 아직도 무척 초라하고 빈약함에 답답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