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깅 정말 하고 싶었는데 최근 들어 또 이래저래 일이 많아져서 블로그를 방치해 두고 있었습니다. 티스토리 운영자님께서는 제 글을 다음의 메인 페이지에 몇 번이나 올려주셨는데 정말 염치가 없군요. ㅎㅎ 경기가 최악이라 다들 먹고 산다고 정신이 없을 때이니 제 블로그를 구독하시는 분들에게는 그렇게 이해를 구하겠습니다.^^;
며칠 전 집에 오는 길에 맥주를 한 팩 사가지고 들어왔습니다. 혼자서는 술 잘 안 마시는데.. 그런 날 있잖아요? 씻고 난 후 소파에 몸을 묻으며 시원한 맥주 한잔 마시고 싶은 날 말이죠. 그 날이 그런 날이었습니다. 맥주 6병 들이 한 팩을 사려고 리커스토어(liquor store)에 들렀는데 오랜만에 술을 사러 와서 그런지 마시고 싶은 술이 참 많더군요. (참고로 저는 술을 좋아하기는 하는데 취해서 컨트롤을 잃어버리는 것은 극도로 혐오합니다.)
맥주 사러 가 놓고서는 위스키, 보드카, 데킬라 등 엉뚱한 하드리커만 이것저것 들었다 놨다 하다가 결국에는 맥주 중에서도 제일 싼 버드와이저를 한 팩 사들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하다못해 싸구려 와인이라도 한 병 사고 싶었지만 제일 싼 미국산 병맥주를 사온 것이지요. 2~3불만 더 쓰면 좀 부드럽게 넘어가는 유럽산 맥주라도 살 수 있었지만 그날도 매번 그런 것처럼 그냥 싼 버드와이저를 들고 오면서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들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 미국에서 좌충우돌 하며 살면서 기쁜 날은 기쁜 대로 서러운 날은 서러운 대로 소주 한잔 하고 싶은 날들이 참 많았습니다만 단 한번도 감정에 쓸려 술을 마신 일이 없습니다. 같이 마실 사람이 없어서가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지만 왠지 아껴둬야 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돈을 아끼자는 것도 있지만서도..ㅎㅎ) 앞으로 다가올 날들 중에 훨씬 더 기쁜 날들, 훨씬 더 서러운 날들이 있을 것 같아서이죠.
아내는 제가 힘든 생활 끝에 소심한 짠돌이가 되어간다며 남자답게 달리고 싶을 땐 그냥 달리라고 하지만 참 고집스럽게 아껴오고 있습니다. 물론 술을 마시지 않고도 기쁨과 감사를 더욱 음미하거나 슬픔과 분노를 다룰 수 있는 방법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정신적으로 더 강해졌을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그런지 간혹 제가 바베큐 파티나 스포츠 바 등에서 맥주를 마시면 다들 놀라합니다. 평소에 술을 못 마시는 사람으로 알았는데 물 대신 맥주를 마시니까요. (대학 때 술친구들이 캐나다, 독일, 북유럽 출신들이었다능...)
살면서 이런저런 사소한 일에도 균형을 잡는 것이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값비싼 샴페인과 미제 병맥주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돈을 더 쓰고 덜 쓰고의 문제가 아니라 씁쓸한 자격지심과 고고한 명분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문제입니다. 이왕에 사는 인생 조금이라도 더 의미를 부여하며 살고 싶은 욕심이라고 해두죠. 삶을 너무 복잡하게 살 필요는 없는데 타향 생활을 하면서 생각이 많아지긴 많아졌나 봅니다.
프리랜서 일을 하면서 많이 바쁘긴 해도 조금씩이라도 수입이 생기고 있는 요즘이라 기분을 좀 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는 가장 싼 맥주 중 하나인 버드와이저이지만 불과 4~5년 전에 한국에 있을 때만 해도 나름 가격이 좀 있어서 특별한 날에나 마시는 맥주였는걸요. 진한 맛의 어메리칸 라거인 버드와이저는 언제 마셔도 맛있습니다. 한 가지 섭섭한 것은 한국에 있을 때 버드와이저를 마실 때면 항상 함께 했던 친구이자 형인 K군이 그립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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