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군/Life Streaming

여전히 생계가 막연하다

Y군! 2023. 3. 17. 13:56

이 블로그는 내가 미국에 와서 직업도 없이 삶이 여러모로 막연할 때 만들었고, 시간이 흘러 마침내 경제활동을 시작하고부터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방치해 왔다. 업무와 육아 사이에 끄적인 수없이 많은 draft 들은 메모장 여기저기에 널려있지만 마무리해서 포스팅까지 보낼 여력은 없었다. 그래도 가끔 심란할 때 들어와서 예전 기억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질 수 있어서 블로그를 도메인과 함께 억지로 유지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이 곳을 다시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실업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빅테크 정리해고 사태에 나 또한 원치 않았지만 직장을 잃게 되었다.

 

2005년, 처음 이민 올 때만 해도 미국에서는 학교 졸업장도 없는 내가 이곳에서 회사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는데, 몇 년 동안 사업을 하다가 2013년에 처음 미국 테크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기를 쓰며 버티며 일을 하다가 이직을 했는데, 최근까지는 소위 말하는 글로벌 빅테크 회사에서 한 부서를 책임지는 직책까지 맡게 되었다. 그런데 세상에 공짜가 없다. 관리직에 고액 연봉을 받게 되니 일의 강도가 높고 다 소화하기가 힘들었다. 특히나 작년에는 경기 때문에 직원 채용에 브레이크가 걸리니 아랫사람들에게 맡길 일도 내가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번아웃이 올만큼 일을 해서인지 이번에 이렇게 실업자가 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장기간의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매일 깊은 감사를 하고 있다. 몇 주 동안 지난 몇 년 동안 손을 놓고 있었던 일들을 많이 해치웠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는 대신에 책도 많이 읽었고 생각도 많이 할 수 있었다. 오래 밀린 숙제들을 해치운 기분이다.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의 양과 질도 많이 좋아졌다. 예전에는 일을 안 하면 죽을 것 같았는데 이제는 일을 안 하는 게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많이 아쉽지만 이제는 구직을 해야한다. 아이가 셋이라 내가 다시 일정 수준의 수입을 만들지 못하면 금세 생계가 막연해질 것이다. 다만 나이가 마흔이 넘어서 그런지 막연한 불안감은 예전보다 덜하다. 내 분야에서 내가 가진 경험과 지식이 결코 적지 않음을 알고,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한 곳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 삶의 방향과 목적 등에 대해서 몇 주간에 걸쳐 깊이 생각해 보니, 내 경력을 어떻게 진행시킬 것인지, 어떤 곳에서 일하고 싶은지, 수입의 어느 정도를 직장에 의존해야 하는지 등이 더욱 명확해진 것 같다.

 

이렇게 쉴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그렇지만 퇴직금 떨어지기 전에 좋은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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