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군/Life Streaming

거주상황에 유감

Y군! 2010. 2. 9. 14:42

요즘 들어서 거주 상황에 대한 대한 불만이 많다. 사실 집은 좋다. 위치도 판타스틱하게 좋다.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센트럴파크에 가서 조깅하고, 오는 길에 브런치 먹고, 집에 와서 샤워한 후에 슬슬 걸어서 조조할인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 지금 사는 곳이다. 도어맨도 있고, 짐도 있는 분에 넘치는 좋은 집인데 왜 이렇게 불만이 많을까.

그건 이게 우리 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부터 이 곳에 이사를 올 계획은 전혀 없었다. 원래는 이사를 갈 집이 따로 있다. 그것도 작년 여름에 완공된 반짝반짝한 새 건물이다. 그런데 그게 문제다. 새로 지은 건물이라 입주자가 입주하기 전에 시에서 완공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뉴욕시에는 현재 완공검사를 받을 건물이 많이 밀려있고, 인력은 부족하고 해서 자꾸 일정이 늦춰지더니 급기야 이전에 살던 집의 임대기간이 만료되고 말았다.

그래서 급작스럽게 집을 찾다가 마침 룸메이트를 구하는 집을 하나 찾아서 들어온게 이 집이다. 그 때만 해도 길어야 두달 정도 지내게 될 곳을 찾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번 멋진 동네에서 살아보자고 이 집에 들어갈 결심을 했는데, 벌써 6개월째 이러고 있는거다.ㅡㅡ;

폼나게 살기는 하는데 집 안에서 꼴이 말이 아니다. 큰 방 하나를 쓰고 있기는 하지만 침대 하나와 업무용 책상 2개(내 것과 아내 것), 사무용 의자 2개, 옷과 책이 가득 찬 이민가방 3개, 그리고 살림살이가 들어있는 십수개의 박스들이 공간을 다 차지하고 있어서 아내와 둘이서 밥 먹을 테이블 하나 놓을 공간이 없다.

moving_boxes

학창 시절 고시원에도 오래 살아봤기 때문에 공간이 부족한 것은 그래도 참을 만 한데 나한테 정말 괴로운 부분은 책장은 커녕 수납공간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모든 것을 나열해 놓고 쓴다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다. 군대시절처럼 관물을 하기에는 손놀림과 정확도가 너무 떨어지는 예비역 10년차다. (정말 그 때는 어떻게 그렇게 살았나 모르겠다.) 게다가 필요한 것이 박스들 혹은 이민가방들 중 하나에 들어가 있을 때는 차라리 나가서 하나 새로 사오고 싶은 유혹이 강하게 든다.

최악의 상황은 다른 데서 구할 수도 없는 물건을 찾아야 하는데 그 많은 박스들 중 어디에 있는지 감을 잡을 수 없을 때이다. 나름 박스들에 레이블을 붙여놓긴 했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박스들을 풀지 못할 거라고는 예상 못하고 큰 카테고리로만 분류해 놓았기 때문이다. 3열로 5층까지 쌓아놓은 박스들을 모두 바닥에 내리고 하나씩 열어서 물건을 찾고 다시 박스들을 차곡차곡 쌓아야 하는데 그 무아지경의 노동을 하면서 무빙세일을 2번 하고 삶의 무게를 줄인 것은 생애 최고의 결정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6개월째 이렇게 살다 보니 나도 드디어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 같다. 작은 것들이 점점 신경을 긁고, 이전에는 느끼지 않던 새 집에 대한 기대와 욕망이 생긴다.

서재 정도는 꿈도 꾸지 않으니 책장 하나 세워놓을 공간이 있는, 책상 한 켠에 집합해 있는 자잘한 사무용품들을 정리해둘 서랍장이 있는, 한밤중에 한국과 일 때문에 전화할 때 화장실에 랩탑과 전화기를 들고 가지 않아도 되는, 스트레스 쌓이면 혼자 문걸어 잠그고 처박혀버릴 방이 있는, 기분 좋을 땐 아내와 치즈와 와인을 즐길 테이블이 있는, 우리 집에 어서 빨리 이사를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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