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 이민생활

버릴 줄 모르는 사람들

Y군! 2008. 1. 14. 15:10

※ 이 글은 저의 제한적인 경험과 지식으로 인한 편견과 일반화가 있음을 미리 알리는 바입니다. :)

미국 TV 프로그램 중에는 집안을 정리하고 예쁘게 꾸며 주는 내용을 가진 쇼가 많이 있습니다. 쇼호스트가 인테리어 디자이너나 목공예 기술자 같은 관련분야 전문가들을 데리고 나와서 지저분한 집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꾸며주지요. 그런데 이런 쇼가 시청율이 무척 높아서 케이블 방송사들이 비슷한 쇼를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왜 시청율이 높냐면 시청자들에게 남의 이야기, 강건너 불구경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Garage Sake Sign>
미국은 소비가 미덕인 나라입니다. 돈이 있는 사람은 값비싼 명품을 얼마든지 쉽게 살 수 있고 돈이 없는 사람은 싸고 좋은 물건들을 자기 취향대로 얼마든지 구할 수 있습니다. 없는 사람도 "돈 쓰는 재미"를 톡톡히 즐기면서 살 수 있는 나라인 셈이지요. 큰 쇼핑몰이든 동네 할인점이든 간에 왠만큼 인구가 되는 마을이나 도시에는 오전부터 주차장에 차들이 가득하지요.

그런데 땅덩이가 넓고 집이 크서 그런지 어떤 사람들은 때가 되면 버릴 줄을 모르고 물건들을 집안에 차곡차곡 쌓아갑니다. 게다가 감정을 중요시하는 문화 덕인지 물건에 대한 추억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해서 안쓰는 물건도 좀처럼 버리지를 못하지요. 그러다 보니 보통 결혼을 해서 가정을 차리게 되면 10년 정도만 지나도 집안에 안쓰는 물건이 넘쳐나게 됩니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이 담긴 물건은 더욱 버리기 힘든지라 아이까지 있으면 그 양이 배가 되지요.

<Garage Sale>
그러다 보니 주말만 되면 Garage Sale이라고 해서 말그대로 창고에 쌓였던 잡동사니들을 앞마당에 다 풀어놓고 동네 주민들에게 파는 모습을 사시사철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고물만 나오는게 아니라 아기 인형부터 중고차까지 그 품목이 다양하고, 주인이 미처 그 가치를 알지 못하고 헐값에 내놓은 명품 혹은 희귀품도 종종 나옵니다. 그래서 Garage Sale만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많고 심지어 이런데서 헐값에 물건을 사서 비싸게 되파는 직업을 가진 사람도 있지요.

미국에서 운전을 하면서 길가를 유심히 보면 심심찮게 Rental Storage 혹은 Self Storage 라는 간판을 볼 수 있습니다. 말그대로 물건을 보관할 공간을 개인에게 임대해 주는 곳인데요. 참 많은 용도가 있습니다만 이곳을 집안에 넘쳐나는 안쓰는 물건들을 보관하는 곳으로 쓰는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물론 집을 빌리는 만큼은 아니지만 보관 기간과 보관 공간의 크기에 따라 비용을 지불해야지요. 집이 좁고 집세는 턱없이 비싼 뉴욕시 같은 경우에는 여름옷, 겨울옷을 번갈아 보관하는 곳으로 많이 사용된다고 하는데 부유하지 못한 패션리더들에게는 필수시설일수도 있겠다 싶더군요.

위의 두 경우처럼 스스로 이렇게 집안의 물건들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집의 안과 밖을 서서히 쓰레기장으로 만들어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건을 처분할 결단력은 없고 날 때부터 정리하는 것 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주로 이러는데 정말 한국에 계신 분들은 상상도 못할 상황을 보게 됩니다. (음식물이 섞이지 않아서) 냄새는 나지 않는 "난지도" 라고나 할까요? 집 안에는 걸어다닐 공간조차 없고 뒷마당에는 쓰레기장이 들어차 있는 집들도 종종 있답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대신 버려주고 정리해 주는 전문가들이 있으니 말 다했지요.

비좁은 땅을 가지고 있고 저축이 미덕이었던 한국에서 자란 제가 보기에 미국은 여전히 참 재미있는 나라입니다. 문화나 경제를 비롯한 여러가지 차이가 선입관을 깨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모습을 보여주는군요. 넓은 땅, 소비지향적 자본주의, 그리고 소유욕으로 만들어진 희한한 보관문화, 타산지석인지 문화적인 거부감인지, 이런 환경 속에서 저는 점점 더 가볍고 심플하게 살고 싶어지네요. (뭐 그래도 돈 좀 만지면 이야기가 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쓰고 싶었는데 제가 본 것만으로 일반화시키기가 어려워서 한 2년 살면서 계속 지켜 보았는데 보면 볼 수록 황당하고 재밌어서 블로그에 안쓸 수가 없네요. 주변 미국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대수롭지 않게 "어떤 사람들은 원래 그래." 라고 말하는데, 혹시 제 이야기에서 부족한 부분이나 덧붙일 부분이 있으면 댓글이나 트랙백으로 함께 나눠 주세요. 다음에는 미국 사람들의 버림과 정리기부에 대한 부분도 한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당연하게도 이 부분에서도 놀라고, 배울 점이 많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