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억을 많이 하고 사는 편이다.

기억하고 있는 최초의 순간부터 현재까지, 물론 상당한 왜곡이 있겠지만, 시간 순으로 나열이 가능하다. 사람이름을 기억하는 데는 시원찮으나 서사나 이미지는 상당히 세세히 기억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든가 가장 소중 기억을 들라고 하면 상당히 난감하다. 30년 가까이 살아온 나날들, 그리고 순간순간이 그렇게 쉽게 추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느 특정 시점의 기억을 환기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

 

수도 없이 누적되어 있는 기억의 파편들 중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최초의 그것은 외가댁 안방 한구석에 있던 외할아버지의 병석이다. 내가 기어 다니기 시작했을 때 외할아버지께서는 이미 많이 편찮으셔서 방한구석에 병석을 만들어두고 링거 주사를 맞으시다가 내가 걸음마를 할 무렵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상한 것은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장례식을 치렀던 기억은 전혀 나질 않는데 그 이전의 기억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집안 어른들께서도 처음에는 내가 외할아버지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했을 때 2살배기적 기억을 어찌 하냐며 믿지 않으셨는데 그 장면의 묘사를 해드리면 너무 정확해서 깜짝 놀라시곤 했다.

 

요즘 들어 느끼는 건데 종종 옛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송두리째 증발해 버렸다거나 아주 약간의 단서는 있는데 통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과거를 회상하기 보다는 앞을 향해 나아갈 나이이고 슬슬 순차적으로 옛 생각을 잊어버릴 때가 온 것 같기도 하다. 기억은 가고 추억만 남는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머릿속에서 사라져 가는 이런 기억들을 기록하고 싶다. 삶을 살며 가졌던 그 느낌, 생각, 그리고 기억을 놓치지 않고 싶다.

 

앞으로는 종종 과거를 기록하는 포스팅을 해볼 작정이다. 시간이 지나서 모이면 나를 비롯해서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제법 재미있는 읽을 거리가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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