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는 아내와 약간의 다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겼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합니다. 아내가 외출에서 돌아오면 저녁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는데 아내가 한시간 정도 늦었습니다. 저는 배고픔을 참고 기다렸는데 먼저 먹지 않았다고 되려 아내한테 핀잔을 들었지요. 아내의 주장은 바쁜 삶 속에서 식사는 각자의 편의를 보아 개인적으로 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제 생각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가족이라면 어떻게든 함께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겁니다.
미국사람들은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문화를 가졌기에 부모 자식 간은 물론이고 가족 구성원 개개인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존중하고 크게 간섭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개인적이라고 해도 미국사회는 기본적으로 가족단위입니다. 그들은 함께 할 때는 함께 하며 그 모임을 즐기고 특히 많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삶을 공유합니다. 매일 식사를 통한 대화가 불가능하면 휴가라도 같이 맞추어서 함께하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들에게 좋은 직장은 봉급을 많이 주는 회사라기 보다는 이런 가족의 결합을 가능하게 해주는 직장입니다.
미국에서 보이는 한국계 이민사회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 중의 하나는 가족의 결합이 많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부모 자식간의 대화는 매우 부족해서 시간이 지나면서 부모와 자식이 완전히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처음 이민을 오게 되면 영어에 능통한 지식 노동자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장시간의 노동을 통해 재산을 모으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매일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게 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게 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좀 살만해지게 되면 이미 가족 구성원들은 서로 너무 멀어져 있습니다. 2세들은 미국사회에 속해서 자라기에 부모와 대화를 하지 못하면 부모를 이해하기는 커녕 깊이 있는 대화도 하지 못합니다. 이런 현상은 자식을 위해 뼈가 부러져라 일을 하는 한국계 이민사회에서 특히 두드러지는데 얼마전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조승희 군의 경우도 이런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제 아내도 이민 2세이긴 합니다만 다행스럽게 부모님과 동생들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느라 한국정서를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이민 1세대 가정들처럼 가족이 함께 모여서 식사하는 데는 익숙하지 않더군요. 저는 이민 1세입니다. 삶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지식 노동자가 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습니다만 어떤 미래가 다가올지는 아직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어떤 삶의 형태가 되더라도 제가 꼭 만들어서 지키고 싶은 가족의 문화가 있다면 식사시간에 함께 모여서 대화를 하며 서로의 삶을 공유하는 모습입니다. 다행히 영어도 하고 미국문화도 학습과 체험을 통해서 어느 정도 익숙하기는 합니다만 TV, 인터넷, 일, 자기개발 등으로 함께 하는 시간이나 대화가 극히 줄어드는 요즘이기에 지금은 겨우 둘 뿐이라도 쉬울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야지요.
엊그제 제가 격렬한 토론 끝에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문제와 저의 의지를 설명해 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풍이라는 것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군요. 그럼 저희 집 첫번째 가훈은 이렇게 되는 건가요?
밥은 다함께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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