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 영어공부

어학연수 절대로 가지마라: 외국인 친구들과 만나며 영어로 놀기

Y군! 2007. 8. 29. 12:13

저는 미국식 영어를 씁니다. 제가 결코 영어를 잘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미국 원어민들은 제가 미국에 온지 2년 되었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4년 전 미국에 4개월 가량의 어학연수를 왔었고 현재는 미국에 살고 있지만 저는 제 영어의 80% 이상은 한국에서 배웠다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교만해 보일까봐 잔뜩 걱정을 합니다만 어학연수를 가고 싶어도 형편이 되지 않는 분들이나 어학연수를 생각하고 계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포스팅을 시작합니다.

지난 번에 포스팅 했던 것처럼 저는 외국인 교환학생들과 "조우" 하며 영어라는 언어에 눈을 떴습니다. 쭉쭉빵빵한 미국, 혹은 유럽 여학생들과 아는 척이라도 해보려는 다소 불순한 의도로 시작되긴 했지만 제 삶에 엄청난 터닝포인트가 되었고 외국인들의 다양한 문화를 격으며 참 많이 그리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학교근처 맛집/술집을 비롯해 서울시 안팎의 재밌는 곳들은 물론이고 주말엔 지방까지 돌아다녔지요. 안되는 영어로 밤새 각국의 문화적인 공통점과 차이점을 이야기하고 특정 주제에 대해 다양한 의견으로 토론을 하기도 했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권에서 왔지만 영어라는 언어로 힘들지만 뭔가 이야기를 나눈다는 사실에 다들 그렇게 즐겁고 재미있을 수가 없었지요. 소통은 인간본연의 유희가 맞는가 봅니다.

미국으로 한학기, 6개월 간 어학연수를 가게 되면 평균 10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합니다. 4달 가량의 코스가 대략 350 만원 정도이고 왕복 항공표가 100 만원, 6개월간의 렌트비가 약 300 만원, 이래저래 먹고 놀고 하면 도합 1000만원은 그냥 넘어가겠군요. 가보신 분들 다 알지만 어학연수 가봐야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 배운 문법을 원어민 교사한테 다시 배우고 말하기, 듣기를 억지로 조금씩 해보는 커리큘럼이 대부분이지요. 게다가 한국사람은 별종이 아닌 이상 수업시간에 입을 열지도 않는답니다. 그나마 어학연수가 장점이 있다면 배운 것들을 바로바로 연습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된다는 것인데 그마저도 유학생들끼리 어울리거나 인터넷 등에 많은 시간을 빼앗겨 활용을 하지 못하지요. 그러니 돈이 무척 아깝습니다.

저는 30%인 300 만원이면 6개월간 영어를 신나고 즐겁게 공부하는 방법을 늘 저의 지인들에게 권합니다. 그냥 한국에서 영어공부 하라는 겁니다. 말하기/듣기/쓰기/읽기 모두 다 한국에서 미국보다 더 잘 공부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미국이나 캐나다가 못지 않은 영어사용의 기회가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며칠전 신문기사를 보니 대한민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이 100만명을 넘었다고 하더군요. 그 중에서 미국인이 12만명에 달하고 중국인은 44만명이 넘더군요.

말하기/듣기/쓰기/읽기의 기본이 되는 영문법은 학원에서 배우면 됩니다. 강남이나 종로가 가까이 있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여의치 않으면 아침이나 저녁에 동네에서 알아주는 명강사에게 가서 2달이면 영어회화나 작문에 기본이 되는 문법은 다 배웁니다. 발음 배우는 것도 아니고 문법 배우는 거니까 당연히 한국의 학원강사들이 미국의 원어민 강사보다 훨씬 더 잘 가르친답니다. 저는 새로 IBT토플의 문법강좌를 추천합니다. 공부를 해보았더니 말하고 쓰는데 필요한 문법이 토익보다 더 좋은 것 같더군요.

말하기/듣기는 돈을 좀 써야 합니다. 국내에 체류하는 수십만명의 외국인과 좀 놀아줘야 하거든요. 꼭 북미사람(미국인, 캐나다인)을 만날 필요는 없습니다. 괜히 영어 배우러 접근하는 사람 티만 나고 상대방도 대화하기가 답답해서 좋아하지 않지요. 요즘엔 북미사람들도 자기들한테 영어 못하는 한국인이 이유없이 접근하면 영어 배우려고 오는지 압니다. 그걸 노리고 나쁜짓을 하는 외국인들도 많지요.

학생이라면 학교의 교환학생들과 친구가 되세요. 저처럼 탁구장에서 우연히 만나시든지 얼굴에 철판깔고 대사 외워서 한번 놀자고 하시든지 일단 한번 만나서 놀아야 합니다. 요즘엔 한국대학들도 외국인 교환학생들이 많아서 그렇게 만나고 놀기가 어렵지 않지요. 외국인에게 대놓고 접근하기가 어렵다면 학교에서 운영하는 여러가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보통 Buddy Program이라고 해서 외국인들의 한국생활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있지요. 또는 외국인 교환학생들이 많이 듣는 강의를 수강해서 팀별 과제 등을 함께 하며 친해질 수도 있답니다. 물론 스트레스가 극심할 수 있는 고난이도 전략이긴 합니다. 제 경험으로는 영어강의도 못 알아듣는데 외국인들과 팀과제까지 하려니 죽겠더군요. 또 다른 방법으로 주말에 지방의 문화재나 사찰 등에 놀러갈 계획인데 같이 갈 사람은 연락을 달라는 내용의 대자보 같은 걸 그들이 자주 다니거나 모이는 곳에 붙여 놓을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2박3일간 단기 어학연수가 가능하지요.

학교에 교환학생이 없거나 학교에 다니지 않는 분들은 외국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가면 됩니다. 수도권에선 대학가에 주로 많은 외국인들이 모여 있지요. 이태원 쪽은 동네가 험해서 추천하지 않습니다. 매달 마지막 금요일이면 홍대 쪽에서 클럽데이라는 행사를 합니다. 사실 행사라기보다는 근처의 클럽끼리 연계를 해서 티켓 하나로 다른 클럽들에도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지요. 제가 한국에 있을 때만 해도 아시는 분들이 많이 없었는데 요즘은 많이 알려졌을 것 같네요. 평소에 가도 외국인들과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지만 클럽데이에는 조금만 노력하면 순식간에 외국인들에게 휩쌓여서 놀게 될겁니다. 물론 술마시고 춤추는게 주목적이 아님을 유의하지 않으면 남는건 다음날 아침의 숙취 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여성분들 같은 경우는 새벽 2시 이후에는 귀가하시기를 권합니다. 홍대 근처도 밤이 깊으면 무법지대가 되거든요.

저는 개인적으로 처음에는 유럽인들을 만나길 권합니다. 영어에 엑센트가 좀 세고 알아듣기 힘들지도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영어의 민족적 다양성(영어도 영국식 영어, 독일식 영어, 스웨덴식 영어, 프랑스식 영어가 다 다릅니다)을 존중하는 유럽인들이 우리 같은 한국식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편안할 겁니다. 그리고 발음이 이상하더라도 문법적으로 정확한 영어를 구사하기에 배울 것도 많고 성격도 일반적으로 북미사람들보다 훨씬 소탈합니다. 말이 통하고 마음이 맞으면 다음에 만날 것을 한번 약속해 보세요. 다음 주말에 같은 장소에서 만나자고 해도 되고, 다른 문화 이벤트를 소개해주겠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술 마시고 노는 것도 좋지만 공부 좀 해서 경복궁이나 인사동을 구경시켜 주는 것이 더욱 남는게 많겠지요. 일본사람이나 중국 사람도 좋지만 영어 정말 못하는 사람이 많아서 나도 영어를 못하는 경우 대화가 진전이 안되는 상황이 생기지요. 저는 아예 포기하고 한자로 필담을 나눈 기억도 있습니다. ^^;

서양사람들은 파티를 무척 즐깁니다. 같은 사람들을 몇 번 만나게 되면 보통 파티 초대를 할 겁니다. 한국에 장기거주를 하는 외국인들은 꼭 자기집에서 여행자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하곤 하지요. 아무도 초대를 하는 사람이 없다면 직접 파티를 열어볼 수도 있습니다. 파티라는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약간 어두운 조명(?)에 음악과 술 그리고 약간의 음식이 있으면 됩니다. 다들 자기가 먹고 마실건 들고 오는 것이 일반이라 맥주만 좀 넉넉히 준비하면 될 겁니다. 아니면 뭐 소주로 깔아버려도 되구요.

이런식으로 서서히 자신의 관계(network)를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로 옮겨 오는 겁니다. 학교 마치고 만나서 노는 친구들이 외국인이고, 퇴근 후에 만나서 어울리는 친구들이 외국인이고, 주말에 만나서 구경 다니고 먹으러 다니는 친구들이 외국인이면 북미에서 어학연수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영어에 노출되면서 살게 될겁니다. 저는 외국인 친구들 데리고 부산에 아시안 게임 보러 갔는데 한참 자다가 새벽에 옆에서 자던 캐나다인 친구가 깨우더군요. 제가 방금 잠꼬대를 영어로 하길래 기념할 만한 순간인거 같아서 깨웠다구요. 그게 외국인들과 어울리기 시작하고 2달 정도 되었을 때였지요. 북미영어를 익히고 싶다면 큰 걱정을 안해도 됩니다. 어느 나라의 외국인 친구를 만나든 간에 한두 다리를 건너면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게 되거든요. 미국인만도 12만명입니다. 당연한거지요.

이번엔 읽기/쓰기 차례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렇게 외국인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메일을 주고 받게 되겠지요. 요즘엔 메신저도 많이 한다더군요. 국내에서는 네이트온이 대세이지만 북미 친구들은 MSN 메신저나 AIM을 많이 쓰지요. 이메일이라면 좀 덜하지만 메신저는 아마 처음에는 머리가 좀 아플겁니다. 걔네들이 하는 이야기 읽고 해석하기도 바쁜데 대답도 해야되니까요. 어렵다고 차단하지 말고 조금씩 이야기를 해나가다 보면 어느새 속도가 빨라질 겁니다.
다음에 할 일은 flickr 같은 서비스에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려서 공유하고 코멘트를 남기든가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겁니다. 좀 더 영어에 자신이 생기면 아예 블로그를 하나 만들어 버리고 스스로가 소셜네트워크의 허브가 되어버릴 수도 있지요. 영어와 한글로 동시에 사용이 가능한 구글의 블로거 같은 블로그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외국인 친구들 중에 블로그를 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겠지요. 아마 이 때 쯤이면 문법강의 들은 것이 빛을 발하고 있을 겁니다. 여태까지 틀리게 쓰였던 말하기 표현들도 글을 쓰면서 교정을 하게 되는 시너지 효과가 나게 되지요. 저 같은 경우 핸드폰으로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는 것도 꽤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이쯤 하고 나면 한 6개월 정도가 지났을 겁니다. 1000만원 정도 썼다면 아마 외국인 친구가 수백명에 이르고 있겠지요. 그렇지 않더라도 주변에 나를 중심으로 모이는 친구들이 대여섯만 있어도 대성공입니다. 그 시점에서 삶을 공유하고 나누는 친구들이 영어를 쓴다면 어학연수가 전혀 부럽지 않게 되는 거지요. 어학연수를 간다고 해도 기를 쓰고 영어를 공부하지 않는 이상 같은 기간 동안 국내에서 놀며 영어를 익히는 것보다 나은 결과를 얻지 못할 겁니다. 저는 미국에서 온 백인 친구랑 방을 같이 쓰기도 했는데 아침에 눈을 뜨고 첫마디가 "Good morning!" 이었고 잠자기 전 마지막에 하는 말은 "Good night!" 이었으니 정말로 어학연수가 부럽지 않았지요.

한가지 유의할 점은 왠만하면 혼자 움직이라는 겁니다. 주변에 영어로 이야기를 해도 부끄럽거나 어색하지 않은 친구가 있다면 당연히 최고의 파트너가 될 수 있겠지만 우리는 대부분 영어에 컴플랙스가 있어서 주변 시선에 상당히 민감하니까요. 저는 운좋게도 함께 모이는 그룹에 영어를 잘하는 형들이 있어서 오히려 긍정적인 자극이 되었지요. 그리고 한국친구들과도 관계의 발란스를 잘 맞춰야 합니다. 영어 배운답시고 친한 친구들을 다 버리면 절대로 안됩니다. 오히려 두 그룹이 함께 모여 놀게 하는 지혜(?)가 필요하지요. ^^;

쓰고 보니 너무 제 경험에 치우친 이야기군요. 제가 군대를 갔다와서 뒤늦게 영어를 시작하고 이런저런 경험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름대로 생긴 노하우이니 다른 분들에게 적절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처럼 영어를 의사소통의 도구로 시작하게 되면 문제집을 풀면서는 영어를 익히지 못할겁니다. 세월이 지나고 모두 추억이 되었지만 그래도 저는 영어와 함께 전세계에 수백명의 친구를 남겼네요. 제가 그들을 만나러 세상을 돌아다닌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한국에 와서 저에게 주고간 선물이라 더 고맙지요.

짧은 시간에 많이 배웠던 만큼 그 긴 이야기와 팁들을 포스팅 하나에 압축해서 쓰기에는 많이 부족하군요. 아무래도 앞으로 중간중간에 얻은 팁들을 조금씩 더 써 봐야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전 영어에 치우쳤는데 중국어는 더 쉽겠네요. 한국에 44만명의 중국인이 있으니까요!

+ 저는 영어를 배우려고 친구를 사귄건 아니고 그냥 재밌게 놀다보니까 영어를 익히게 된거지요. 그리고 그런 경험이 거꾸로 적용하면 영어를 하려고 애쓰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포스팅을 했습니다. 그러데 이런게 된장남, 된장녀가 될 수도 있는 거였군요. 이 포스팅을 읽으시는 분들도 저도 참고해야겠습니다. oTL 된장이라니..

+ 어디까지나 방법론이까요. 영어 공부 하겠다고 친구 사귀는게 싫으신 분들은 참고 안하셔도 됩니다. 그래도 사업 때문에 접대 하는 거나 상사한테 잘 보이려고 술을 마시는 것 보다는 순수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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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여름, 친구들과 사물놀이를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