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1/20) 낮에 버락 오바마 (Barack Obama) 미대통령 당선자가 미국의 44대 대통령으로 취임을 했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오바마라는 인물이 미대통령으로 취임한 것은 미국사회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233년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대통령이 나왔다거나, 경제가 내려앉아 버린 8년간의 공화당 집권이 끝나고 새로운 희망의 민주당 집권이 시작되었다거나 하는 사실이 전부가 아니지요. 그것은 미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라면 완전히 느끼지 못할 새로운 시대로의 감동일 것입니다. 그가 경제뿐만 아니라 인종, 이념, 세대간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게 될지는 미지수이지만 이미 그 희망에 대한 상징성은 넘치고도 남는 것 같습니다.
<취임선서를 하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
흑인이 미대통령으로 취임했다는 사실이 다른 여러 인종(민족)사회 및 흑인사회 스스로가 흑인을 바라보는 인식을 많이 바꾸고 있는데, 저는 흑인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어느 정도인지가 궁금합니다. 같은 미국에 사는 사람들도 흑인들을 별종 보듯이 하는 경우가 아직 지역별로 좀 남아있는데 우리는 아예 단일민족으로 이루어진 국가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익숙하지 못한 피부색에 대한 선입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때때로 그 정도가 지나친 경우도 보게 됩니다. 흑인들은 더럽고 냄새 나며 지능이 낮다는 등의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치 않는 분들도 있는데, 온라인 혹은 오프라인 상의 대화중에 그런 생각들을 접하게 되면 당황스러운 것은 둘째치고 그들이 진짜로 그렇게 알거나 믿고 있는것 같아서 놀랍기만 합니다. 사실 오바마라는 인물이 흑인사회 평균의 삶이나 문화와는 100% 싱크되는 백그라운드를 가진 것이 아니라서 모든 흑인들이 다 오바마 같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이참에 흑인들에 대한 단편적인 생각들을 좀 적어봅니다.
<‘I have a dream’이란 명연설을 남긴 마틴 루터 킹 목사>
인구의 13% 정도를 차지하는 흑인 사회는 백인 주류 사회에 비해서 열악한 편입니다. 그들이 미국 땅에 처음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200년이 넘게 계속된 인종차별과 사회적 장벽 이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주저 앉혀버렸습니다. 몇십년도 아니고 200년이 넘게 피부색 때문에 그런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어 버리겠지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인종차별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도, 다른 민족들이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희망을 품고 미국 땅에 들어와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는 동안, 여전히 흑인 사회는 교육이나 노동에 의한 사회적 지위 상승, 혹은 그에 대한 희망조차도 자포자기 해버린 안타까운 상태였습니다. 그러한 경향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흑인들에게 더욱 심한데, 아직도 명문대에 재학 중인 흑인들의 경우 남미나 아프리카 계통의 흑인들이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할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사실이 피해자인 흑인들을 위험하고 나쁜 열등인종이라고 치부할 근거가 될 수는 없는 것이지요.
한인사회의 경우, 빈민층이 많은 흑인 상권에서 가게를 하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흑인들에 대한 좋지 않은 경험을 가진 한국분들이 많은 편입니다. 먼저 이 땅에 와서 자리 잡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위험한 빈민가가 그나마 경쟁이 적고 기회가 있는 편이기 때문에 늦게 이민 온 분들 중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흑인상권에서 가게나 사업을 하는 분들이 많은 까닭입니다. 실제로 예전에 이민을 와서 어렵게 정착하신 분들에게 흑인들에게 사기나 강도를 당한 이야기는 제법 흔한 이야기인데 그래서 흑인은 다 나쁘고 위험하니까 상종도 하지 말라는 말이 더더욱 공공연한 것 같습니다. 제가 그분들 입장에 서지 않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지만 미국 역사상 연쇄살인범들이나 악질 범죄자들 중에서 흑인들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는 사실을 보면 흑인만 위험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흑인 뮤지션, Lil Wayne과 T.I. - 무섭나요?ㅎㅎ>
우리가 흑인들을 어렵게 여기는 이유 중 다른 한가지는 그들의 패션, 억양, 행동 등 흑인사회 고유의 문화가 여전히 우리에게 낯설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갱스터 뮤직이 인기가 많은 것도 아니고, 흑인들이 쓰는 억양을 영어시간에 가르치진 않거든요. 특히 큰소리로 억양 센 영어로 이야기하는 흑인을 보면 말을 붙이기는 커녕 괜히 불편해져서 피한다는 분들도 많은데, 그것은 순전히 서울 사람이 경상도 아이들이 서울에서 이야기를 하면 싸우는 줄 알고 피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저도 경상도 출신이고 사투리가 강한 편인데 서울에 와서 싸우지 말라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지요. 그들의 갱스터 패션이나 거칠어 보이는 행동 등도 같은 관점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흑인들이 쓰는 slang(은어, 속어)을 백인들도, 동양계 미국인들도 다 똑같이 씁니다. 다만 억양이 다를 뿐이지요. 단순히 말해서 흑인들은 미국의 주류 백인들에 비해서 다르게 말하고, 입고, 행동할 뿐입니다. (They just talk differently, dress differently and act differently.)
<힙합그룹 Run DMC 출신의 성공한 사업가 Russell Simmons와
한국/일본계의 흑인이자 뉴욕에서 두번째로 재산이 많은 여성인
Kimora Lee Simmons, 그리고 그들의 두 딸, Ming과 Aoki>
지난 번에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조지아주(Georgia)의 아틀란타(Atlanta)에 한번 가면 흑인들의 학력수준은 매우 높아서 대졸자가 고졸자보다 훨씬 많으며 경제수준도 매우 높습니다. 몇년전 그곳에서 흑인들과 함께 일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제 경우는 그 때 그들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꼈습니다. 지금은 과거에 악명 높았던 뉴욕의 할렘(Harlem) 근처에 살고 있어서 동네에 흑인들이 무척 많은데, 겉보기에는 좀 거칠고 가난해 보여도 사람들이 얼마나 친절하고 인간적인지 모릅니다. 이것도 또다른 일반화의 시작이 되겠지만, 꼭 순박한 시골사람들이 도시 한복판에 삶을 형태를 바꾸지 않고 살아가는 것 같을 정도입니다. 물론 저도 길에서 처음 마주친 흑인 청년에게 "What's up, brother!" 라고 인사를 하지는 않습니다만 꼭 정겨운 답례를 해주는 사람들인 것을 알기에 가벼운 인사말을 건네는 것을 서슴치 않습니다. ※brother라는 호칭은 같은 흑인들끼리 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미국의 수많은 인종들, 민족들 중에서 흑인들을 특별히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밤에 안자고 시끄럽게 노는 문화를 가진 인종이나 민족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요.) 그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면서 흑인이면 다 나쁘고 열등하다는 식의 선입견이 있다면 이제는 좀 변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그들이 분명히 우리와는 많이 다르고, 우리가 아는 미국사람의 전형적인 모습과 많이 다를 수 있지만, 그들은 미국에 함께 살고 있는 개성 있는 인종들, 민족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 그들이 미국에서는 오랫동안 차별을 받으며 사회적인 상승을 자포자기해버린 것도 사실입니다만, 이제는 그들도 오바마 대통령이라는 실현될 수 있는 희망을 가슴에 품고 변화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여러세대를 거치며 가지게 된 오명들을 모두 씻어내고 자랑스럽고 당당한 주류가 될 수 있기를, 한 세대 후에는 이런 글을 쓸 때가 있었음을 놀라워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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