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3달간의 긴 수험생모드를 마치고 자유인, 혹은 백수가 되었다. 데드라인에딱 하루 전에 급행으로 원서를 보내고 데드라인 날 GMAT 시험을 치렀다. 갑자기 내린 결정이니만큼 모든 준비가 굉장히 빡빡하기는 했지만 아무튼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었다. 시험 및 대학원 응시료만 800불 가까이 들었다. 만약에 대학원에 낙방을 하게 된다면 그간 써온 시간과비용 때문에 상당한 데미지를 받을 터이지만 후회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앞만 보고 가도 모자란 판에 이미 퍼부어 버린 자원을 아까워한들 무엇을하겠는가. 매몰비용(sunk cost)은 장부상으로도 의미를 두지 않는다.

결국 GMAT도 TOEFL도 만족할 만한 점수를 내지 못한 것 같지만 나름 건진게 제법 된다. 첫째, 딱 내 수준의 수학문제를 신나게 풀었다. 대학 졸업 후, 약 2년간, 통계라든가 계산식에 이유를 알 수 없는 갈증을 느끼고있었는데 거의 퀴즈 수준으로 약간만 머리를 쓰면 되는 문제들을 시간까지 제면서 실컷 풀어 젖혔더니 어찌나 속이 시원한지 모르겠다. 취미로 수학,물리 혹은 화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둘째, 영어가 놀랄 만큼 늘었다. 친구들하고 웃고 떠들거나 직장에서 의사소통을 위해하는 수준의 영어는 구사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전문용어가 가득하거나 이리저리 꼬인 장문의 글을 읽는 건 어려움이 있었다. 시험문제 푸느라 매일단어를 수십 개씩 외우고 어려운 지문들을 계속해서 접하다 보니 비록 일시적일지언정 월스트릿저널이라든가 이코노미스트 같은 (나한테는 어려웠던) 잡지도읽히고 아침에 CNBC를 봐도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겠다. 이걸 어떻게든 유지를 해야 하는데 잡지를 정기구독 하고 틈나는 데로 뉴스를 봐야 하나?요즘에 대학에 다니는 세대는 어릴 때부터 영어조기교육을 받아서 이 정도는 한다고 하는데 나는 요만큼만 되어도 마냥 기분이 좋다. 셋째, 쓰기나에세이 문제를 푸느라 되든 안되든 영어로 긁적대기를 한두달 했더니 영어로 긁적이는 속도가 무척 빨라졌다. 영문 블로그를 방문하는 외국친구들도 내글이 많이 좋아졌다고 칭찬을 하니 헛공부가 없다는 말이 다시 한번 실감이 난다.

Top 20 정도 되는 MBA 스쿨이 아니라 적당한 지방공립대의 석사과정이 목표이다보니 공부의 강도나 수준이 많이 낮아서 공부한 게 한국에서 학원에 다니며 배운 것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적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집에처박혀 이정도 했으면 나름 잘 했다고 스스로에 칭찬을 해준다. 공부 시작하고 두달 정도 되었을 때 하루에 10시간 정도 공부를 안 하면 죽자고책상 앞에 써 붙였는데 며칠 뒤에 깨달은 건 죽어도 하기 싫은게 있다는 거였다. 공부가 하기 싫은게 아니라 꼼짝 않고 책만 붙들고 있는게 몸서리치게싫었다. 그런걸 보면 고시공부 하는 친구들은 정말 나와 피가 다른 존재인가 보다. 어떻게 그렇게 집념을 가지고 1년이고 2년이고 참아내는 건지...존경할 수 밖에 없다.

대학원 준비가 끝나면 시간이 많이 남을 줄 알았는데 그간 미루어 온 일들이 많아서 시간이 오히려 모자란다. 하고 싶어도 못했던 일들을 리스트로 만들었는데 하나하나 지워나가는 것이 이제부터 할 일이다. 응시결과는 2주에서 3주 정도걸리니 그 동안 마음 편히 실컷 즐겨두어야 한다. 밀린 포스팅도 열심히 하고 그간 연락 못한 사람들한테 편지도 쓰고 책도 좀 읽어야 한다. 합격하면학교 갈 준비하느라 바빠질 테고 떨어지면 취업 준비 하느라 바빠질 테니 할 일은 챙겨서 해야 한다.

  1. 이름 (2018.07.20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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