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이어서 또 주전자를 태웠다. 그로 인해 받은 정신적인 충격이 매우 크다.

솔직히 말해서 주전자를 태우는 것은 아버지나 어머니 뻘 되시는 분들이나 하는 나이 때문에 생기는 실수라고 생각해왔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감자나 빨래를 삶다가 태우시는 걸 봐왔고, 장인 어른께서 커피물 끓이시다가 주전자를 몇 개씩 태우시는 것을 보면서 나도 세월이 지나면 언젠가 주전자를 태우는 날이 오겠거니 했는데.. 생각보다 그 날이 예상보다 훨씬 빨리 온 것이다.

드립커피와 차를 즐겨 마시기에 주전자에 물을 끓이는 것이 나에게는 생활의 일부이다. 물 올려 놓고 딴 일 하다가도 시간이 되면 몸 안의 어떤 센스가 경보를 주고, 나는 제깍 하던 일을 멈추고 불을 끄러 가곤 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 센스가 작동을 하지 않는 것 같다. 한번 정도는 어쩌다 실수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완전히 놓아버리고 있었다는 것을...

그게 아니면 드디어 내게도 집중하는 힘이 생긴게 분명하다.

그렇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 거다..
제발 이것이 건망증의 발동이 아닌 배가된 집중력의 증거이길 바랄 뿐이다.

충격에 휩싸인 아내가 한마디 한다. 세월 앞에 버티지 말고- 인정할건 인정하고- 물 끊으면 경적(whistle)이 울리는 주전자나 하나 사란다.


두 번 태우니 계속 쓰기가 민망할 만큼 지저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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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후로 (2011.07.15 00:55 신고)
    전 매번 태우는걸요.. 그래서 예쁜 법랑 주전자, 냄비는 절대로 못사지요. 물론 주전자엔 휘슬이 달려있고 주로 커피 내릴 때는 커피포트를 이용한다는^^ 나이 때문이라고 하기엔 전 그냥 ADHD
  2. BlogIcon Benoit (2011.09.13 10:45 신고)
    PEI 글 찾다가 블로그를 발견 했습니다. 저도 2007 년도에 맨하튼 city collage 근처에 살았었는데 말이죠. 옛날 생각이 확 나네요. 그리고 주전자 혼자 태우시는거 아니니 걱정 마세요. ㅎㅎ 저도 몇번 태우고 베이킹 소다로도 못 씻을 정도가 돼서야 휘슬 달린 주전자를 하나 구입 했답니다. 남편이 아파트 태울까봐 하나 사줘야 겠다는 군요. ㅎㅎ 블로깅 계속해 주세요. :) 전 이번주 PEI 갔다 와서 또 글 남길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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