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군/느낌 생각 기억

그 때는 몰랐었다 - 사는 이야기 조금

Y군! 2008. 10. 5. 15:02

며칠전 아침부터 기분이 희한하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 1999년 그날 군에 입대를 했더군요. 이제는 시간이 꽤 지나서인지 논산 가기 전날밤 그 야릇한 기분이 다시 들지는 않지만 아직도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불면 생각이 많아집니다. 그 날 뉴저지 쪽에서 볼 일을 보고 집에 가는 길에 버스를 놓쳐서 30분 정도 뉴욕 맨하탄의 스카이라인을 보면서 걸었습니다. 경이롭기까지 한 뉴욕의 반짝이는 빌딩숲을 보면서 걸어가자니 그것이 꿈이 아니라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더군요.

군대 있을 때만 해도 지금의 제 모습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기질적으로 모험을 좋아하고 리스크가 좀 있어도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편이지만, 98년 IMF 금융위기와 함께 대학생활을 시작하고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첫 3학기를 보낸 후 질려서 군대를 갔습니다. 그래서 안정적이고 월급 잘 나오는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군에 있을 때는 지상최대의 목표였는데 지금 저는 그 목표와는 180도, 아니 540도 다른 삶을 살고 있군요.

강원도 인제에서 군생활 나름 빡세게 해서 용기가 좀 생겼는지 복학 후에는 본능을 따르고 열정이 생기는 곳으로 계속 움직이긴 했습니다만 이렇게까지 멀리 오게 될 줄은 몰랐지요. 지구 최고 물가를 자랑하는 미국 뉴욕에 살면서, 너무 초기라 월급도 제때 못받는 인터넷 스타트업 벤처에 올인하고 있다니 말이죠. 안정 따위는 안드로메다에 보내버린 것 같습니다. 인생의 가치가 질주하는데 있답시고 달린건 좋았는데 너무 나갔다 싶을 때도 간혹 있고, 꿈을 꾸는 건 아닌가 싶을 때가 아직도 있으니까요.

이렇게 도전하는(??, 혹은 리스크를 등에 지고 삽질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견문을 넓힌다는 관점에서 분명 값진 면이 있겠지만 오래 고수할 라이프스타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내와 함께 의논하고 결정하면서 살아가는 삶이기에 미안해도 해볼만 하지만 아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동의를 구한 적도 없는 아이에게 남들보다 못한 성장환경을 주고 싶지 않고, 남자가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데 부족함이 있으면 아르바이트 네댓개를 뛰어서라도 메꿔야 한다는게 제 다짐인데 그렇게까지 가고 싶지 않거든요.

아직 젊다는 담보 하나 가지고 남들에게 또라이 소리 들어가면서 이렇게 살고 있는데 어서 빨리 이 시간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물론 목표를 가지고 단계별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중이기 때문에 후회는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지만 힘든 건 힘든 거니까요. 실속 없는 것이 겉은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요즘 한국서 사정을 잘 모르시는 분들이 블로그만 보시고 너무 멋지게 사는거 같다고들 하시길래 리알리티(reality)를 살짝 보여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