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 영어공부

영어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Y군! 2007. 7. 12. 01:03

저는 영어를 매우 늦게 시작했습니다. 영어를 제도교육 안에서 끊임없이 배워오기는 했으나 오직 시험공부가 있었을 뿐이지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의지를 가지고 영어를 공부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어를 시작한다." 는 표현을 썼습니다. 요즘처럼 학생시절부터 원어민 강사들로부터 쉽게 영어를 접할 수 없었던 제 또래 이상의 분들은 공감하시리라 믿습니다.

복학 첫학기를 매일 단어만 찾다가 끝내고 답답한 마음에 여름방학을 맞아 토플책을 몇권 사들고서 영어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8시간씩 단어를 외우면서 복학생 특유의 무식한 공부를 한달 정도 하고 난 후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선배형을 따라 기숙사 지하에 탁구를 치러 갔는데 마침 이쁘고 늘씬한 외국인 교환학생 둘이 탁구를 치고 있더군요. 그런데 이 외국인들이 저희에게 복식을 하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 순간 제 머리는 중학교 때부터 저녁 먹기 전까지 공부한 모든 단어와 문법을 스캔하기 시작했습니다. 영화 "뷰티플 마인드"를 기억하시나요? 주인공 주위로 단어들이 날아다닙니다.

그런데 탁구 두 게임을 하는 동안 제가 할 수 있었던 말은 단 한마디였습니다. "나이스!" ㅡㅡ;  마지막으로 "구구구굳바이!" 라고 말하고 나니 겨우 두 게임 했는데 긴장으로 온몸이 땀 범벅이 되어 있더군요. 도서관으로 돌아오는 내내 만감이 교차하고 "내가 영어를 왜 공부하고 있는가?" 라는 물음이 머리 속에서 맴돌았습니다. 도서관에 도착하자마자 토플책을 덮어버렸습니다. 한달을 죽어라 공부한 언어가 의사소통의 도구이지 못하면 가치가 없다는 것이 제 결론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도서관에 간 저는 중학교 영어 교과서들을 빌려왔습니다. 백지에 써내리면서 바로바로 떠오를 수 있도록 외웠지요. 고등학교 영어 교과서, 대학 교양영어 교과서까지 한번 그렇게 다 쓰면서 외웠습니다. 그때는 정말 머릿속에 전등이 하나 켜진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영어를 왜 공부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의사소통(communication)'이라는 당연한 생각을 그제서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동기부여가 되어서 그런지 시험공부를 위해서 10년을 억지로 공부한 영어가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신바람과 함께 2주일만에 대략 복습이 되더군요.

언어는 의사소통 수단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런 점에서 중고교 영어교과서는 정말 훌륭한 영어공부의 교재입니다. 다양한 상황과 그에 맞는 쉬운 표현들이 가득합니다. 고급영어는 그 속에 쓰인 쉬운 단어들을 어려운 단어와 구문으로 바꾸면 됩니다. 어려운 표현은 차차 배워서 응용하면 됩니다. 저는 무척 운이 좋은 편입니다. 영어를 뚜렷한 목적과 함께 이렇게 쉽게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쉽게 시작한 만큼 쉽게 활용할 수 있었고 5년 후인 지금은 거기에 살이 붙어 미국에서 영어만 쓰고 살아도 부족함이 거의 없습니다.

한번도 제가 영어를 잘 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영어도 잘 못하는 사람이 영어 공부하는 법을 가르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영어를 상당히 늦게 시작했고 그만큼 욕심이 더 컸기에 여러가지 시도를 해볼 수 있었고 그 효과도 많이 보았습니다. 앞으로 제 블로그를 통해서 이런 재밌는 또는 유익한 경험을 좀 더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보시는 분들에게 영어공부의 작은 팁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 될 것 같습니다.

 

여담: 지난 날에 "나이스"와 "굳바이", 단 두 단어만 말했던게 억울해서 견딜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말하는 것만 상황별로 대화를 설정해서 딱 일주일 연습한 후에 그 외국인 여학생들이 자주 다니는 길목에서 서성거리다가 탁구를 칠(?)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방학 막바지에 보람있는 한 건(!)을 한 거지요. 아내는 이런 뒷이야기를 전혀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