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 이민생활

상식은 통한다 - 미국에서 물건 환불 받기

Y군! 2009. 1. 27. 13:33

일주일 전에 마음 크게 먹고 부츠를 하나 샀습니다. 유니온 스퀘어(Union Square, NYC)에 있는 DSW(Designer Shoe Warehouse)란 신발 전문 대형 매장에서 구입을 했지요. 며칠을 모셔두다가 어제 처음 꺼내 신었는데, 잠시 벗었다가 다시 신는 중에 지퍼 손잡이가 위로 쏙 빠져 버렸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지퍼의 제일 끝에 있어야 할 멈춤쇠가 없더군요. 발도 편하고 디자인도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다른 제품으로 교환 받기로 마음을 먹고는 오늘 오후에 매장에 다시 갔습니다. 그런데 한발 늦었는지 제 사이즈가 다 팔리고 없더군요.

별수 없이 환불을 받으려고 계산대에 갔더니 직원이 한번 신었던 신발은 회사 방침상 교환 혹은 환불이 안 된답니다. 당연한 이야기이는 한데, 제품 결함 때문에 환불을 받으려는 걸 안 해준다고 하니 좀 화가 나더군요. 그래서 간만에 열 좀 냈습니다. 양파가 잔뜩 들어간 샐러드를  점심으로 먹어서 웬만하면 입 안 벌리고 방긋방긋 미소나 지으면서 해결하려고 했는데 그 직원이 고객인 저에게 대하는 태도가 너무 엉망이라 눈 부릅뜨고 어니언 브래스(onion breath) 공격을 해서 환불 받아왔습니다. ㅡㅡ;

대화내용:

Y군: 일주일 전에 산 신발인데 지퍼가 고장 났어. 한번 신었는데 바로 고장 났으니까 환불해줘. (영어니까 반말..^^)
직원: 어라, 벌써 신었네? 회사정책상 교환도 환불도 안 되거든? 그냥 가.
Y군: 제품결함이 신발을 한번 신었다는 사실보다 우선인 것 같은데 정말 환불/교환이 안돼?
직원: (전형적인 그 훈계하는 태도로) 말했잖아. 회사 정책이라고. 우리는 그런 불량한 제품을 판매하지 않아. 네가 신발을 신었기 때문에 망가진 거야.
Y군: (주먹 불끈 but 아직까지 잘 참고 있음..) 아니야, 내가 신어서 그런게 아니야. 여기 잘 봐, 지퍼에 멈춤쇠가 없잖아? 이건 불량이야. 그건 내가 신은 거랑 상관이 없어.
직원: (귀찮다는 표정으로) 우린 그런 제품 판매 안하거든? 우리 회사 품질관리 잘해. 제품에 문제가 있으면 그 회사랑 직접 해결해.
Y군: (눈이 돌아감) 말 잘했다. DSW 같은 큰 회사가 고객서비스나 제품 관리를 이렇게 하지는 않을 것 같거든? 이게 도대체 무슨 경우니?
직원: (눈을 위로 굴림)어떻게 해줄까? 매니저라도 불러줄까?
Y군: (눈이 나오려고 함. 그렇지만 차분하게.) 당장 불러줘. 고객서비스 매니저도 같이 불러줘.
매니저: (직원에게) 무슨 일인가?
직원: 얘가 신발 신어놓고 환불해 달라고 떼쓴다. 지퍼까지 망가진 걸 환불해 달라고 해서 회사정책상 안된다고 했다.
매니저: (직원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환불해줘.
직원: 그렇지만 회사 정책이...
매니저: (빠르게 자리를 떠나면서) 품질 불량은 무조건 환불이야.
직원: (분에 차서 내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신용카드 줘봐. (영수증 보여주며) 여기 사인해.
Y군: (불쾌함과 뿌듯함이 혼합된 묘한 표정을 감추며) 고마워.

미국의 소매업체에서 고객 서비스를 받을 일이 생기면 대부분 친절하게 처리를 해주는데 간혹 직원들이 회사 방침 혹은 정책 (policy) 들먹이면서 '우기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식업체 직원과는 달리 불친절한건지 멍청한 건지 모를 답답한 직원들 때문에 일반 소매상에서 쇼핑하기를 싫어하시는 분들도 꽤 있습니다. 오늘 저는 DSW 정도 되는 유명한 업체가 환불 정책을 그딴 식으로 할 리가 없는데 직원이 우기는 통에 매니저까지 불러서 겨우 해결했는데, 영어가 서툴거나 미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는 분들에게는 이런 경우가 여간 난감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영어 못하고 미국이 낯설 때는 이런 일이 생기면 결국 혼자 해결을 못하고는 꼬마들이 동네 형에게 얻어맞고 엄마한테 고자질하는 것 마냥 미국친구들에게 하소연 하고 함께 돌아가 제 권리를 찾곤 했었지요. (겪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나이 먹고 이런 짓하는 기분을 말이죠... ㅜㅜ;)

그런데 사실 이런 경우가 생기면 당황하지 않아도 됩니다. 비록 영어가 서툴다고 해도 차근차근 논리적으로 대응해 가면 소비자가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미국에서 한 가지 믿을 만한 것은 일정 규모 이상의 조직이라면 가지고 있는 정책, 방침, 절차, 매뉴얼 등, 그것이 운영되는 시스템입니다. 워낙에 다양한 가치관의 사람들이 살고 있고 교육수준 또한 천차만별이라서 누구에게 적용해도 무리가 없는 말 그대로 단순하고(simple) 상식적으로(commonsense) 아주 잘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조금의 에누리도 허락하지 않는 단순하고 상식적인 시스템이라 많이 느리고 답답할 때도 있습니다만 소비자 혹은 고객이 가장 존중받는 주체라는 당연한 사실은 절대적으로 보장됩니다.


<말이 안되는 걸 우기면 안됩니다.^^>

만약 오늘의 제 경우처럼 정책이나 방침을 내세우면서 우기는 직원들이 있다고 해도 미국 상거래 정책에는 상식이 통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당당히 맞서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말이 안 되는 걸 가지고 우겨 되면 안 되겠지요.) 특히, 소비자에게 불이익이 돌아가게 하면서 장사를 하는 소매업은 미국과 같은 자본주의 무한경쟁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품을 환불하거나 서비스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려면 당당히 맞설 필요가 있습니다. 매니저 부르는 걸 서슴지 말아야 합니다. 영어가 서투르거나, 이런 경우가 낯설거나 하더라도 한번 해볼만 합니다. 환불을 못 받거나, 스트레스를 좀 받아도 직접 상황에 부딪혀 보면서 배우는 것들이 많을 테니까요. 이런 경험을 통해 비슷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도 생길 거고, 영어도 덤으로 배울 겁니다. 싸울 때 듣거나 쓴 영어는 잘 안 잊혀진다고 합니다.^^;

덧1: 제품에 결함이 있어서 교환/환불을 원하신다면 quality of product 하나만 물고 늘어져도 이길 수 있습니다.^^

덧2: 품질불량이 아닐 경우, 신발의 경우 한번이라도 외부에서 신어서 밑창이 조금이라도 닳아보인다면 환불불가가 정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