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군/느낌 생각 기억

버스 안에서 영단어를 외우는 멕시코 청년

Y군! 2010. 1. 10. 11:37

꽤 오래 전부터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여기저기로 웹 컨설팅 일을 하러 가고 있다. 아침에 맨하탄에서 뉴저지로 reverse commuting을 할 때도 종종 있다. reverse commuting은 보통 도심지 주변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도심으로 통근을 하는데 반해 도심지에 거주하며 일은 주변 지역에서 하기 위해 통근하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매일 뉴저지에서 수백만의 인구가 맨하탄으로 버스, 기차 자가용 등을 이용하여 통근(commuting)을 하는데 반대로 맨하탄에서 뉴저지로 출퇴근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주로 버스를 이용하는데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warehouse 등에서 일을 하는 멕시코인 노동자들이 타고 내리는 것을 자주 보게 되는데 언제부터인가 이들 중 자주 보는 한 청년이 매일 열심히 수첩을 보면서 뭔가를 중얼거린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노래가사를 외우는지 시를 외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남들은 다 자는 버스 안에서 볼 때마다 참 열심이다. 얼마 전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슬쩍 들여다 봤는데, 수첩에 가득 찬 글자들은 다름 아닌 영단어들이었다. 스페인어 억양이 잔뜩 들어간 그 발음(!) 때문에 그 동안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그 청년의 수첩에는 영단어들과 스페인어로 쓴 단어의 뜻들이 손글씨로 페이지마다 빼곡했다. 아직 어린 친구인데 참 치열해 보였다. 미국이라는 이국 땅에 건너와서 육체노동을 하며 하루를 살고 있지만 남들은 다 자는 아침 버스 안에서 그렇게 단어를 외워대는 모습이 치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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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4년 반 전에 처음 미국에 왔을 때 그런 때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름 한국에서부터 타국살이 준비를 해왔지만 현실로 맞닥뜨린 이민생활의 하루하루는 차갑고 무딘 칼에 억지로 베이는 것 같았고, 그래서 매사에 치열하지 않을 수가 없었나 보다. 지난 해 회사를 시작하고서 바쁘고 열정적인 나날들을 보낸 것은 좋았는데, 연말을 지내며 어느덧 나태해지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운 좋게 출근길에 만나는 청년에게 교훈을 얻었고, 1월 첫 주부터 무더기로 들이닥친 클라이언트들의 의뢰로 정신을 번쩍 차리기는 했지만 ‘초심’이란 간직하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버스 안에서 보는 그 멕시칸 청년이나 4년 반 전의 나 자신에게 지고 싶지 않기에 지금 이 순간 그 치열함을 잃을 수가 없다. 작년에 맨하탄으로 갔던 이 블로그 주인, 치열한Y군이 죽지도 않고 또 왔다.